은행의 경영체제는 은행장을 최고 정점으로 하여 구성되는데 우리나라
은행들의 경우 은행장은 행내적으로는 경영전권을 행사하는 막강한
자리이면서도 행외적으로는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문제는 안으로는 강하면서도 밖으로는 약하다는 불균형 때문에,
예컨대 대출.인사 등에 대한 외부압력이 쉽게 은행 내부로 침투될 수 있고
은행발전을 위한 경영혁신이 노조 등 이익집단의 저항 때문에 어렵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은행경영의 공정성과 경영혁신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은행
경영진에 대한 보호장치와 더불어 경영권의 남용.오용에 대한 견제장치도
동시에 마련되어야 한다고 본다.

은행경영진에 대한 이러한 보호.견제장치는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은행의
주인 찾아주기"에서 접근되어야 할 것이다.

주인이 없는 은행에서 주인 아닌 바깥 사람들이 주인노릇을 하다보니
은행 경영권의 취약성과 독주가 배태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은행에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바로 은행 경영권을 보호하고 또 견제할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된다.

그동안 우리는 은행 경영진의 보호차원에서 시도하여 본 것이 은행장
선임의 공정성을 위한 "은행장추천위원회" 제도의 도입이었다.

이는 은행경영의 최고책임자 선임에 있어 외부압력을 배제하거나 적어도
매우 어렵게 하였다는 점에서는 종래에 비하여 진일보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막중한 은행장 선임을 위한 추천위원들의 구성에 대한 법적.
논리적 근거가 약하고 또한 그것이 일회용으로 끝나는 것이어서 책임의식의
결여문제가 지적되어 왔다.

우선 추천위원 구성에 있어 은행경영의 일관성 유지 측면에서 위원 9인중
에서 전임행장들이 3명이나 참여하는 전임자 수효과다의 문제, 대주주.
소주주대표(4명)의 선임에 있어서 그들의 대표성 문제, 그리고 수십만의
은행고객들중에서 기업.개인대표 자격으로 2명이 들어있는데 그 선정의
임의성과 은행.고객간의 이해상충 문제 등이다.

행추위의 또다른 문제점은 은행장후보추천과 동시에 소멸되는 일회용이라는
측면이다.

은행장 후보를 추천하려면 상당기간 그 후보의 경영능력에 대한 관찰.
평가가 뒷받침돼야 하고 은행경영의 결과에 대한 이해 당사자이어야만
책임의식을 갖고 후보추천을 신중히 할 수 있다.

따라서 은행장 추천기구는 은행경영의 이해 당사자로 구성되면서 경영
능력을 상시 관찰.평가할 수 있는 상설기관이어야 할 것이다.

다음은 은행의 책임경영체제 문제와 관련하여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금융전업가"제도 문제라고 생각된다.

은행의 소유구조문제 논의에 있어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즉 대기업에
의한 은행의 사금고화를 방지해야 한다는 경계심 때문에 금융자본가만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하려는 발상이 "금융전업가"제도 도입의 배경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러한 발상의 근저에는 은행소유와 관련하여 "산업자본=나쁜사람"
"금융자본=좋은사람"이라는 양분법 사고가 있다고 보여진다.

과연 그러할까.

금융전업가가 은행을 소유하더라도 경영간섭 여하에 따라서는 특정기업
으로의 편중융자나 부실여신이 일어날 수가 있으며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경영하더라도 금융감독장치와 책임경영체제가 잘 되어 있으면 편중.
부당융자는 방지될수 있다.

은행의 사금고화 우려는 은행소유권이 산업자본가냐 금융자본가냐의
문제이기 보다는 금융감독장치와 은행경영진의 준법경영 여부에 더 크게
달려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번의 은행경영체제 논의에 있어서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간의
작위적인 구별을 지양하고 주주면 누구라도 은행경영감리에 같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바람직스러운 은행경영체제의 재구축은 어떠한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

그것은 은행 경영권을 보호함으로써 경영진이 은행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여 소신있는 경영혁신을 가능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경영진을
견제하여 은행경영의 공정성과 건전성, 그리고 주주.종업원들의 이익증진이
이루어지도록 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은행의 책임경영체제 강화와 관련하여 정부가 한국금융연구원의
공청회 자료로 내놓은 몇가지의 대안중에서 은행 경영권의 보호와 견제를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은 "비상임이사 중심의 이사회" 제도와 "경영위원회"
제도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두개 안이 모두 은행주주 공익대표 등 사외 이사들이 주축이 되어
은행장후보추천, 임직원 보수, 예산승인, 은행합병 등 은행의 주요 경영
사항을 결정하게 되어 있는데 필자 개인의 생각으로는 행외이사와 행내
이사가 혼성되어 있는 전자에 비하여 후자의 "경영위원회"안이 사외
비전문가들의 일상 경영참여에 따른 경영 비능률을 방지하면서도 은행경영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한다는 측면에서 더욱 바람직스러운 형태라고 생각된다.

다만 "경영위원회"안에는 은행장이 위원회 구성에서 제외되어 있는데
은행경영의 최고책임자인 은행장은 "경영위원회"에 당연직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은행경영과 은행감리기구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하는데 꼭 필요하다
고 본다.

은행들의 사외이사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는 미국 은행들의 이사회나
독일의 감독이사회의 경우에도 집행부의 은행장이 의장이나 혹은 부의장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 제기된 은행의 책임경영체제 강화방안은 은행 경영진에 힘을
실어주면서도 주인들의 감리를 확실히 받게하여 낙후된 우리나라 금융산업을
한단계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