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친목 모임이 있지만 나는 우리회사의 기우회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인생의 묘미가 스며있는 19줄의 바둑판이 좋고 더불어 살아가는
직장 동료의 푸근한 정이 그립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한가지 이유가 더있다.

겁없는 신입직원시절, 좌총우돌하면서 기우회를 태동시킨 장본인이
바로 본인이기 때문이다.

10명으로 단출하게 시작했지만 어느듯 40명으로 식구가 늘었다.

업무의 특성상 항상 긴장을 늦출수 없는 우리 직원들이 점차 바둑의
심오한 진리에 심취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의연한 마음으로 정겨운 수담을 나누노라면 하루의 스트레스는 어느듯
잊혀지고 바둑실은 훈훈한 이정이 감도는 웃음의 장이 된다.

동료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우정의 대상이 되고 직장이 전투의 장이
아니라 따뜻한 보금자리가 된다.

이제는 회사에서 푸짐한 상품을 지원해주는 정기대회를 매분기 개최할
정도가 되었다.

대회후의 친목시간은 곧잘 개인적 애로사항까지 함께 해결하는 화합의
장으로 이어진다.

현재의 회장은 유광행이사,부장급에서 신참직원까지 전직급이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이제는 회사를 떠난 임직원들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아마 초단 실력인 회장은 성격대로 간결한 정석 선택과 호방한
중앙전투로 유명하다.

입사시절 4~5급 실력이던 배복원, 장우진 책임역은 발빠른 행마와
강력한 전투력으로 아마 3단의 수준에 진입했다.

아마고수임을 자칭하는 내가 선으로도 쉽지않은 상대로 성장하여
기쁜 마음으로 청출어남의 날을 기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컴퓨터 X세대 직원들을 가르키는 증거움이 하나 더 생겼다.

"바둑 한판에 인생살이 몇판이 들어있는지 자네는 아는가?"

"소탐대실을 아는가?"라는 말을 감히 하면서.

하나 그것을 어디 가르친다고 할수 있겠는가.

바둑이야 한수 가르쳤겠지만 젊은 그들에게서 나는 패기를 배우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