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그룹 계열사에 근무하는 신세대 직장인 엄상욱씨(28)는 입사 초기에는
직장상사들로부터 구박을 받기 일쑤였다.

컬러 와이셔츠에 베스트(조끼)를 걸치고 머리는 무쓰로 잔뜩 힘을 준채
직장에 출근했기 때문이다.

"어디 유흥업소 웨이터가 술값 받으러 왔느냐"는게 그당시 선배들의
핀잔이었다.

그러나 엄씨는 선배들의 구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의 스타일을
밀고 나갔다.

딱딱한 회사생활을 하면서 이정도 자유는 누려야겠다고 굳게 다짐해서다.

"첨단 패션이 업무수행에 도움이 되면 됐지 해롭지 않다"는게 엄씨의 주장.

틀에 박힌 사고방식으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신세대의 합리적 사고가 반영돼 있다.

사실 신세대들은 옷차림에 많은 투자를 한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이미지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말쑥한 첫인상은 누구를 만나서도 어색하지 않다.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남들에게 뒤지기 싫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신세대 직장인들이 화려하고 값비싼 옷들만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고급 브랜드를 선호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대량생산되는 제품이면 단호히
거부한다.

남대문 도깨비시장을 뒤지더라도 자기마음에 들어야 산다.

선글라스 등 액세서리는 "길거리표"가 더욱 멋있기도 하다.

S그룹에 근무하는 박찬미씨(여.26)는 머리염색으로 자신의 개성을
나타내는 케이스.

은은한 포도색과 갈색 머리칼은 느낌만으로도 만족스럽다.

폴로 이스케이프원 이터너티 등 향수만으로도 색다른 변화를 준다.

유니폼을 입지 않는 회사에 다니는 그녀의 동창들은 다양한 옷차림으로
한껏 멋을 내고 다닌다.

항상 정장차림이어서 다소 불만인 그녀는 그러나 블라우스나
스카프만으로도 자기를 표현할수 있다고 귀띔한다.

신세대들의 패션이 더욱 세련돼 가면서 중간세대와 구세대 직장인들도
옷차림에 신경쓰기 시작했다.

무쓰는 어렵더라도 컬러 와이셔츠와 향수정도는 따라하기 시작한 것.

보수적인 엄상욱씨의 직장상사들도 언제부턴가 토요일이면 캐주얼복장을
하기 시작했다.

일부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멋부리는 것을 은근히 장려하기도 한다.

쌍용증권이 대표적인 곳.

쌍용증권에서는 신세대사장인 김석동사장(36)이 앞장서 바지멜빵을 나눠줘
영업직을 중심으로 애용하고 있다.

미국 증권가인 월스트리트에서 증권맨들이 전통적으로 멜빵을 착용하고
있어 기업이미지 구축에도 좋다고 쌍용증권측은 설명했다.

직원들도 처음에는 어색해 했으나 활동성도 높이고 포인트도 줄수 있다고
만족해하고 있다.

일부 광고기획회사 등에서는 캐주얼이 유니폼처럼 이해되고 있기도 하다.

개성을 존중하는 신세대 때문에 최근들어 주문형 와이셔츠업체들도
성업중이다.

똑같은 것을 거부하는 신세대들이 자기만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맞춰
입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구세대들은 체형이 기성복과 달라 양복 등을 맞춰 입었지만 신세대들은
체형보다는 디자인 색상 등을 위해 이를 이용한다.

의류업체들도 신세대를 의식해 다품종 소량생산에 나서고 있다.

색상도 더욱 화려해지고 있다.

신세대 첨병들의 패션의식이 직장문화뿐 아니라 생산체제에까지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 정태웅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