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제 <삼보산업대표>

얼마전 택시를 탄 적이 있다.

운전기사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손님. 우리 사회가 참으로 한심스럽습니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승용차가 미어터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것뿐이 아니예요.

고급승용차와 비싼 외제물건은 또 웬말입니까.

과소비와 사치가 온통 넘치고 있어요.

이게 될 말입니까.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 보려던 정신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굶주리던 보리고개 시절의 뜨거운 맛을 다시 한번 봐야 해요"

기사의 어투가 무뚝뚝하고 표현도 다소 지나친 감도 없지는 않았지만
우리 현실의 정곡을 그대로 찌른 듯하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수 없었다.

우리 경제는 20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눈앞에 두고 있으며 1,000억달러
외채국이란 불명예를 뒤집어 쓰기 일보직전인 상황에 처해 있다.

"고비용 저효율"구조에 맥을 못추면서 국제경쟁력은 뚝 떨어지고
기업들은 앞다퉈 외국으로 외국으로 향해 공동화현상이 초래되고 있다.

경제난국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고 위기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우리경제가 이대로 가다가는 멕시코처럼 폭삭 주저 앉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재 우리경제 상황이 매우 나쁘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부나 국민 모두가 예사로이 받아들이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듯 하다.

정부이 대책이라야 미온적이어서 난국 수습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고
국민들도 자기 아닌 남만 탓할뿐 스스로 반성할 줄 모르고 있다.

오늘날 턱없이 올라버린 인건비와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는 역대정권들이
치밀한 계획성없이 어설프게 경제정책을 썼던 때문은 아니었는가 생각해
본다.

그런데 이제와서 또다시 잘못된 정책을 답습할 수는 없으며 그럴 경우
인플레만 조장할 뿐 우리경제를 구제할 길은 사라지고 만다.

우리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정부나 국민이 모두 오늘의 위기상황을
바로 파악해 특별한 비상대책을 강구해야 하며 이에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9.3경기대책은 그런면에서 환영할만한 것이었다.

수출주도형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국제경쟁력이 약화되면
별수없이 우리경제는 망하고 만다는 사실은 지극히 당연하다.

국제경쟁력이 약화된 원인은 매우 분명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대책도 답도 이미 나와 있다.

그런데도 과감한 시정책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그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것 아닌가.

아무리 어려운 국면이라고 하더라도 순리대로 풀어야 하고 충격요법은
좋지 않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독한 병에는 극약처방도 필요한 법이다.

비상대책도 순리일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제2의 경제혁신과 새로운 도약을 해야 한다.

그래야 21세기를 앞두고 펼쳐지고 있는 국가간 무한경쟁에서 우리의
존재를 스스로 지켜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국민의 의식과 체질을 먼저 개선해야 한다.

호화사치성 물품들을 겁없이 사대는 과소비등을 배척하고 근검 절약하는
국민정신이 아쉬운 때이다.

이와함께 모순된 경제구조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둘째 지금부터 향후 3년간 인건비와 물가를 적정선에서 지켜야
하며 시설을 관리하는 조직들의 경영여건악화나 서비스질 향상등을
이유로 인상했던 공공요금은 선별해 인하 환원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셋째 금리를 과감하게 대폭 인하, 고금리에서 비롯된 기업체들의
금융비용 부담을 덜어 줘야 한다.

말로만 선진국 진입을 외치면서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방향과 어긋나는
정책이 있다면 바로 금리부분이다.

선진국 어느나라에서 우리처럼 금리가 높은 곳이 있는가.

넷째 생산적 중소기업들의 생산활동을 부추기고 이들의 자금난을
덜어준다는 차원에서 기업간 거래의 어음발행제도를 폐지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한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지만 어음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가 대체
얼마나 되는가.

기업들은 신제품 신기술 개발에 역점을 두고 전력을 기울여야 함은
물론이다.

다섯째 사치와 과소비풍조를 일소하고 근검 절약하며 예절을 지키는
풍토를 되살려 내야 한다.

거국적인 국민운동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또 영화와 TV드라마 잡지등 모든 매체에서 미풍양속에 저해되는 유행을
초래할 수 있는 내용을 자제하고 교양적이고 교육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

문화에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과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변화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따라서는 안되는 정신문화마저 무조건 서구와 미국을
따라가려해 잘못된 향락풍조와 과소비,범죄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끝으로 쾌적한 환경조성에 최선을 다해 푸른산 맑은물의 금수강산
본래 면목을 회복시켜 외국관광객들이 우리나라를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대책을 시행하지 않고는 우리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유경제 체제에 어긋난다고 반론을 제기할런지는 모른다.

그러나 국가경제를 그르칠수 없다는 위기위식에서 출발한다면 우선순위는
분명해 진다.

또 어떤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순수한 자유경제정책을 채택한 나라도
드물다.

일본이 오늘날 경제대국으로서의 면모를 갖게된 것은 개인보다 국가와
사회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국민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분수도 모르고 덤벙대는 철부지 국민이 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국경조차 없는 치열한 경쟁체제하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 명실상부한
경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국민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경제에는 우연이란 존재할 수 없다.

오늘날 경제난국은 우리국민에게 새로운 각오와 인내, 지혜와 희생과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