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나라살림을 꾸려가기 위한 당정간 부처별 예산심의가 지난 3일
끝났다.

각 부처가 요구한 내년 예산에 대해 예산당국인 재정경제원이 조정한 안을
놓고 당정이 오는 9일까지 예정인 계수조정작업을 벌이기위한 사전심의를
마친 셈이다.

재경원이 심의기간중 제출한 자료를 뜯어보면 당초 당정이 내년 예산편성의
기조로 삼은 긴축의지가 반영된 측면도 없지 않지만 무엇보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생색내기용" 예산배정은 빠뜨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경제살리기"와 "97년 대선승리"라는 두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당정 예산관계자들의 의도가 예산배정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선용 예산배정으로 지적되고 있는 사안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공보처의 새해 예산안 가운데 "국가 주요시책 광고비"가 지난해보다
절반 가까이나 늘어났다.

내년도 국가 주요시책 광고비는 1백억5천4백만원으로 올해의 68억3천8백만
원에 비해 47%나 증가했다.

이를 두고 야권은 내년 대선을 겨냥한 여권의 득표전략의 일환이라고
벌써부터 공세를 퍼붓고 있다.

문화체육부 예산가운데는 "건전종교활동 지원"이라는 개념이 모호한
사업을 위해 올해보다 1백37.5% 늘어난 12억7천8백만원이 배정됐다.

지원대상에는 팔만대장경국역 전산화사업, 성균관 향교의 생활예절지원,
전용사찰 정비사업 등이 포함됐다.

건전종교활동 지원예산이 늘어난 것은 여권의 "불교계 끌어안기"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경원이 제출한 자료에는 예산이 반영되지 않았지만 당정협의를 통해
새마을운동본부 바르게살기운동 중앙협의회에 사업비지원 명목으로 1백억원
을 배정키로 한 것은 이른바 관변단체의 표를 의식한 예산반영이란 지적이
지배적이다.

또 국가보훈처 예산중 광복회등 국가보훈 단체운영지원을 위해 올해보다
44.5%가 증액된 1백15억8천3백만원이 배정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야권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는 2급이상 공무원의 내년도 임금을 동결키로 했지만 하위직 공무원의
임금인상률에 대해서는 아직도 당정이 최종 결론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당수 공무원들의 사기를 염두해 두고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당측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공무원 봉급을 동결하는 것은 난센스"라며
정부측에 하위직 공무원들의 임금인상을 밀어붙일 움직임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신한국당 예산관계자들은 계수조정작업을 벌이면서 "내년 대선때 우리
지역구에서 표이탈을 막아야 한다"며 밀려드는 "민원예산"배정에도 몹시
신경을 쓰고 있다.

전철복선화 지역내 실내체육관건립 공항신.증설 대학신설등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지역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예민한 사업들이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홍구 대표위원이 당직자회의 등에서 "소속의원들이 너무 지역에 연연한
사업비배정을 요구하기 보다는 국가경제 전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여러차례 강조한 것은 민원예산 배정요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대선을 겨냥한 예산이 골고루 배정되다 보니 환경분야나 복지분야 예산은
대폭 삭감되는 "기형구조" 예산이란 지적이 환경단체등에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기도 한다.

신한국당은 오는 11일 당무회의에서 당정간에 합의된 내년 예산안을
의결하고 국회예결위에서 본격 심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대선용이라 지적받는 예산안을 놓고 여야간의 격론이
예상된다.

< 김호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