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사 특약 독점 전재 ]

지도자의 건강문제가 요즘 중국과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의 최고실력자 등소평은 최근 92회째 생일을 맞고서도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언어능력을 상실할만큼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추측
되고 있다.

올해 65세인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 역시 재선이후 공공장소에 등장한
일이 거의 없어 국정수행능력에 강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75)은 지난 7월 독일에서 신병치료를 마친
뒤에도 계속 국민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이들 3개국에는 전세계 인구의 4분의1이 살고 있다.

병약한 노인들이 절대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 3개국이 지도자 건강문제로
혼란에 빠진다면 전세계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 국가의 지도자 건강문제를 외부에서 불필요하게 민감하게
받아 들여 확대조명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정국은 등소평이 건강했을 때와 크게 달라진게 없다.

그가 지난 92년 남부중국을 순례하면서 경제개혁과 개방에 대한 마지막
강령을 제시한뒤 중국경제는 지도자의 뜻대로 빠른 성장제를 이어가고 있다.

외교노선에서 조금 호전성이 드러나고 있지만 등소평이 건강한 모습으로
권좌에 앉아 있다고 해서 지금 보다 덜 호전적인 외교정책을 펼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러시아 또한 설사 대통령 유고사태를 맞더라도 공산당이나 민족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옐친 대통령과 같은 정치노선을 가진 세력들이 권력을 승계하게 되어 있다.

또 러시아 국민들은 체첸분쟁이 잘 수습되고 생활이 안정되기만 하면
대통령이 건강하든 않든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다.

국가지도자에게 나이는 그 자체가 국정수행능력에 결정적인 약점으로 작용
하지 않는다.

등소평은 74세의 나이에 권력을 잡아 혼란했던 정국을 잘 수습했고 정력적
으로 개혁.개방을 이끌었다.

이밖에 글래드스톤,드골,넬슨 만델라 등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국정을 수행한 지도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역사는 그러나 나이 많은 정치인들이 정열과 통찰력을 제대로 보완하지
못함을 보여 주기도 한다.

로널드 레이건 전미국대통령은 집권말기에 감세정책을 무모하게 추진하면서
국민들의 동의를 얻는데 실패해 무능하다는 비난을 샀을뿐만 아니라 미
행정부의 재정을 크게 악화시켰다.

86년 레이카비크 미.소정상회담에서 75세의 레이건은 젊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서기장보다 현저히 뒤쳐진 협상력을 보여 거의 소련의
의도대로 핵무기감축협정이 체결됐다.

정치지도자들은 또 나이가 들면 젊은 지도자들 보다 병에 걸리기 쉽고,
병을 앓게 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루즈벨트 처칠 미테랑 등의 집권말기 실정을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나마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등 서방선진국들은 최고지도자의 건강상에
큰문제가 발생하더도 불안을 쉽게 극복할 수 있다.

권력이 지도자 한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지 않고 국정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지도자의 건강에 이상이 있을 경우 이를 공개시켜 만약의 사태에
철저하게 대비한다.

하지만 이제 막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단계의 나라나 지도자 한사람에게
절대권력이 부여되어 있는 정치체제에서는 지도자의 건강문제가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특히 러시아는 핵무기를 내세워 팽창정책을 폈고 아직까지 민주주의를
정착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최고지도자인 옐친 대통령의 건강상 이상기류에
온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다.

만약 옐친이 주기적으로 심장발작을 일으켜 국정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심각한 권력다툼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은 권력이 최고지도자 한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는데다 권력승계의
절차가 명확하지 않아 러시아보다 더 심각하다.

현재까지는 강택민 국가주석의 권력승계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강주석이 등이 누렸던 막강한 실권을 이어받더라도 상당한 내부진통을
겪은 뒤에나 가능하다는게 정설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