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성들의 과다노출이 성범죄를 유발시킨다는 이유로 경찰이 단속에
나섰다고 한다.

경찰이 이른바 "경범죄"라는 죄목으로 장발의 남학생과 미니스커트차림의
여대생을 불러세우던 70년대를 상기시키는 이 시행령은 21세기를 목전에
둔 현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노출의 계절인 여름도 다 지나간 마당에 뒤늦게 단속을 편다니 시기상
적절하지 못할뿐 아니라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옷입는 방식에 경찰권을
동원한다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발상이라고 할수 없기 때문이다.

옷은 개성의 적극적인 표현일뿐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옷차림을 통해 그
사람의 감춰진 인격이나 취미까지도 짐작할수 있다.

40년 넘게 옷을 만들고 옷에 대해 가르치는 학교를 운영하다보니
나는 상대방의 차림만 봐도 그 사람을 판단할수 있게 됐다고 말하면
지나친 얘기일까.

우스갯소리같지만 젊었을 때 친지로부터 소개받은 남자가 처음 만나는
날 흰구두를 신고 나온것을 보고 두번다시 만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하긴 30~40년전만 해도 소위 옷을 잘 입는 멋쟁이라곤 외국문물을
접할 기회가 비교적 많은 외교관과 연예인이 전부였으니 그런대로
변명의 여지가 있을수 있다.

국민 대다수가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할만큼 궁핍한 시대였으니
옷차림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시대는 바뀌어 이제 우리는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에 접어들었다.

이제 거리에 나서면 사람들의 옷차림이 매우 고급스럽고 감각또한
세련돼졌음을 느낄수 있다.

그러나 패션잡지에서 방금 빠져나온 듯한 최신유행의 옷을 걸친 신세대
아가씨곁을 스쳐가면서도 정말 "멋쟁이"라는 생각이 들지않는것은 왜일까.

그것은 첫째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복장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른 아침 출근길의 화려한 실크블라우스, 등교하는 학생의 굽높은
하이힐은 멋있다기보다는 불편하고 거추장스럽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배꼽티와 핫팬츠는 친구들과의 하이킹이나 휴가길의 복장이지 사무실
출근복은 될수 없다.

지난해 패션의 메카라고 하는 파리에서 오페라를 감상할 기회가
있었는데 음악과 무대는 물론이요 관람객들의 나무랄데 없는 복장이
인상적이었다.

젊은이부터 백발의 노인들까지 단정하고 분위기에 잘 맞는 옷을 입은데서
그 국민의 수준을 감지할수 있었다.

값비싼 옷으로 치장했다는 말이 아니다.

자기만을 돋보이려는 과시적인 차림은 주변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반면 수수하더라도 격식을 갖추고 주변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는 차림은
보는 이까지 유쾌하게 한다.

때와 장소를 가려 옷을 입으려면 옷이 꽤 많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꼭 그런것은 아니다.

진정한 멋쟁이란 적은 옷을 다양하게 매치시키는 센스를 가진 사람이다.

나는 40년동안 "누구나 싫증내지 않고 자주 입을수 있는 옷을 만들자"는
의지를 실천해왔다.

그래서 옷장 가득 옷을 쌓아두고도 "입을 옷이 없다"고 푸념하는
사람을 만나면 되도록 충동구매는 자제하고 코디네이션감각을 기르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옷이 날개다'' ''입은 거지는 먹어도 벗은 거지는 동냥도 못 얻는다''는
속담이 있다.

요즘에는 이런 말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값비싼 옷을 입어야
행세할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돼 과소비만 부추기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재력을 자랑하고 싶어 차려입은 옷은 입은 사람의 천박한
과시욕까지 함께 드러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동화속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