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한담] "혼탁한 세상에선 원칙/기본에 충실을" .. 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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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도효성그룹고문(63)은 여느 회사 "고문답지 않게" 무척이나 바쁘다.
그룹계열사 사장들이나 임원들의 자문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배고문은 그룹 일뿐 아니라 대외활동도 활발하다.
15년간 조세행정과 세무행정을 하면서 명성이 자자했던 그는 퇴임
세무공무원들의 모임인 세우회 고문으로 세무관료의 대부역할을 하고 있다.
또 이홍구신한국당대표 이회창신한국당고문과 경기고 49회 동기동창인
그는 경기고 총동창회 부회장과 서울대학교 동창회이사도 맡고 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지난 63년 청와대 비서실 근무로 공직을 시작,
66년에는 국세청 첫 총무과장으로 국세청 탄생의 산파역을 맡기도 했다.
80년 국세청차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나 83년까지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을 역임했다.
83년 당시 효성그룹 계열이었던 대성목재 사장으로 재계에 입문,
효성물산 동양폴리에스터 사장 효성그룹 종합조정실장을 거쳤다.
공사다망한 그를 서울 공덕동 효성빌딩 15층 그룹고문실에서 만나봤다.
======================================================================
-며칠전 정부가 세법개정안을 내놓았지요.
오랜 세월 조세 정책과 세무행정을 다루신 원로로서 이번 개정안을
보는 눈은 남다르실텐데요.
<> 배고문 = 이번 세법개정은 근본제도를 뜯어 고치는 개혁적 세제개편도
아닌데 뭘요.
다만 면세점을 올리는 것은 저소득 근로자들의 세금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좋지만 응능부담 원칙이 점점 더 손상되는 것 아닌가 걱정스럽습니다.
소득세는 돈을 많이 번 사람은 세금을 많이 내고 적게 번 사람은 적게
내야 하는데 세금을 한 푼도 안 낸다는 건 바람직한 게 아니지요.
세금면제나 세금경감은 조세원칙보다 더 우선해야 할 정책과제가 있을
때만, 그것도 신중히 해야 합니다.
-세무공무원으로 계실 때는 정말 개혁적 세제개편을 많이 하셨지요.
<> 배고문 = 그렇습니다.
지난 74년 종합소득세 76년 방위세 그리고 77년에 도입한 부가가치세제
등을 만드는 데 관여했습니다.
그 때 만든 세제골격이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부가가치세를
도입할 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 하마터면 좌초될 뻔 했지요.
-부가가치세를 도입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배고문 = 조세체계를 단순화하고 세정을 과학화하기 위해서였지요.
당시 간접세는 8개 세목으로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에 세수관리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를 단순화해 안정적인 세수를 확보하자는 게 부가가치세제 도입의 근본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반대여론이 들끓었나요.
<> 배고문 = 그 때나 지금이나 새로운 세제를 만드는데 국민들이 찬성한
일은 없으니까요.
또 부가세제 도입 당시가 마침 선거철이라 정치바람을 타기도 했지요.
어떤 야당 국회의원은 부가세가 도입되면 큰 일 난다고 떠들었어요.
지역구여론이 아주 나쁘다며 결사 반대의 입장을 취했지요.
그러나 그 국회의원의 지역구는 농촌지역이라 과세자가 1백명 정도 밖에
안됐어요.
제도의 본질도 모르면서 여론에 영합하는 사람이 정치인들 중엔 참 많구나
하는 걸 그 때 느꼈습니다.
-그래도 박정희대통령이 밀어붙였다지요.
<> 배고문 = 박대통령의 예지력이 없었다면, 그리고 행정력이 우위에
서 있지 않았다면 부가가치세는 빛을 볼 수가 없었겠지요.
-결과적으로 부가가치세 도입은 잘했는지 모르지만 행정력으로
여론을 완전 무시한 건 아닙니까.
<> 배고문 =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론과 국민들의 세부담을 감안해 당초계획보다 세율을 대폭 낮췄습니다.
폐지되는 세목의 세수규모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13.5%의 세율을
적용해야 했지요.
하지만 박대통령이 국민의 세부담이 너무 커진다며 세율을 10%로 내릴
것을 지시했습니다.
-부가가치세제는 간단히 말해 마진의 10%를 세금으로 징수한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상인들은 너도나도 내야 할 세금만큼 아니 그 이상 물건값을
올려 받았다지요.
말하자면 부가가치세제가 물가인상을 부채질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 배고문 = 마진에 10%의 세율을 적용해 가면 결국은 최종 소비하는
사람만 세금을 물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통과정만 투명하고 세금계산서만 제대로 발급되면 부가세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유통체계나 세금계산서 문화등 제반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가세제는 너무 성급했다고도 볼 수 있지요.
부가가치세 때문에 물가가 오르고 경제가 나빠져 부마사태가 일어났다고
분석하는 학자들도 있지 않습니까.
<> 배고문 = 그같은 분석은 비약이겠지요.
부가가치세는 오히려 국가재정이나 세정과학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봐야
옳습니다.
그런 확신 때문에 이 세제를 도입한 거고요.
-요즘의 세정이 정말 과학화 선진화 됐다고 보십니까.
<> 배고문 = 현저히 향상됐지요.
전산화도 상당히 진척됐고요.
이제는 웬만한 세금고지서는 모두 전산으로 발송돼지 않습니까.
세정과학화가 많이 진척된 게 사실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아무래도 과학화 됐겠지만 그래도 세도가 날뛰지
않습니까.
지난 94년 인천에서 세무공무원들이 지방세를 포탈한 데 이어 최근에는
국세청에서도....
<> 배고문 = 틈만 생기면 부정을 저지르려는 게 사람의 심성인지도
모르지요.
-국민들의 납세의식은 어떤가요.
역시 틈만 있으면....
<> 배고문 = 납세의식도 많이 좋아졌지요.
우선 탈세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 들었지 않습니까.
대신 절세책을 강구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지요.
그러나 절세는 나쁜 게 아닙니다.
세법은 복잡하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면 안내도 되는 세금을 내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공인회계사나 세무사 등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절세를 하는 것이
어떤 점에선 장려할 만한 일이지요.
-법망을 피해가려는 사람과 이를 막으려는 조세행정력과의 긴장관계는
여전하다는 말씀이군요.
<> 배고문 = 그렇습니다.
세금은 아무리 그 목적이 훌륭하더라도 납세자의 입장에서 보면 돈을
빼앗긴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지요.
기꺼운 마음으로 세금을 내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나는 항상 후배 공무원들을 만나면 세금을 내는 국민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봉사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조언합니다.
세무공무원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금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국세행정은 목소리가 낮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겁주는 표현을 해서는 안되고 조용하고 부드러워야 합니다.
고질적인 범법자는 엄단해야 하지만 대체로 선량한 납세자에게는 편안하게
해줘야 합니다.
-그래도 국민들은 세무서에 가기를 꺼려하지요.
아마 경찰에 가기보다 더 싫어할 겁니다.
<> 배고문 = 사실 납세자가 세무서를 자주 들락거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요.
인간은 누구나 돈에 대한 욕심이 있기 때문에 세무공무원은 가급적
납세자와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는 게 좋습니다.
직접 대면하지 않고 문서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투명한 세무행정을
위해 필요하다는 겁니다.
최근에는 그렇게들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얼마전엔 출국세 신설문제로 시끄러웠지요.
백지화되긴 했지만 목적세를 너무 남발하려는 정부의 자세가 문제
아닙니까.
<> 배고문 = 목적세는 가급적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세정이나 세제가 특수한 분야의 이익을 위해 활용되는 것은 별로
바람직스럽지 않기 때문이지요.
공평성이나 형평성 타당성 등 세정의 원칙을 지키는 범위내에서 예외가
있을 수 있지만 남용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세무관료로 계시다 기업쪽으로 자리를 옮기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 배고문 = 후배들에게 자리를 비켜 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효성그룹에 입사한 것은 조석래회장과 경기고등학교 선후배사이로
이전부터 친분관계가 있었고 또 송인상동양나일론회장의 권유도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공직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민간 기업에서 생활하면서 혹시 갈등 같은
건 느끼지 않았습니까.
공직생활과 기업생활은 차이점이 많겠지요.
<> 배고문 = 한마디로 공과 사의 차이지요.
그러나 그건 과정에 불과합니다.
국가 사회에 봉사한다는 결과는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20년 가까운 공무원 생활중 아쉬운 점은 없었습니까.
<> 배고문 = 정부에 있을 때는 내가 제일이고 내가 다 잘아는 줄로
생각해왔는데 기업에 와서 보니 내가 너무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업을 이해했었다면 공무원 생활을 더 훌륭히 했었을 텐데...
그래서 요즘 후배공무원을 만나면 기업의 입장을 좀 더 이해하도록
노력하라고 충고합니다.
-사회의 흐름을 보면 과거에는 관이 민을 주도했지만 현재는 민간부문이
앞서간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 배고문 = 부분적으로 그런 면이 있지요.
특히 대기업에 있는 맨파워는 대단합니다.
세계화 기업가정신 등 관이 민에게 배울 게 많지요.
시대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순발력이 필요한데 관이 그점에서 민에
뒤지기 때문이지요.
-요즘 새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 세대의 사회적응력은 어떻습니까.
<> 배고문 = 대단하지요.
상당히 발랄하고 우수한 인재들이 많으니까요.
동기부여를 해주고 잘 리드해 주면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많은 능력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너무 자기중심적이라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시대상황에 대한 적응력을 말씀하시면서도 "심화 가화 인화" 등 3화를
가훈으로 삼고 있을 정도로 화를 강조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심화는 정확히
어떤 뜻입니까.
<> 배고문 = 자기분수를 알고 만족하며 사는 것이지요.
현실을 불평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책임을 지고 살자는 뜻입니다.
-좌우명인 "성의정심"은 또 무슨 의미입니까.
<> 배고문 = 그건 소학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성실하고 마음이 반듯해야 한다는 뜻이죠.
국세심판소가 74년 설립될 당시 국무총리였던 김종필씨가 휘호를 하나
써 준다고 하길래 "성의정심"을 써 달래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국세심판소에는 이 글귀가 걸려 있을 겁니다.
국민의 세금문제를 다루는 국세심판소에 딱 어울리는 글귀지요.
-붓글씨가 상당히 수준급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 배고문 = 수준급은 아니고 그냥 취미로 즐길 뿐입니다.
어려서 할아버지께 배운겁니다.
붓을 잡고 붓끝에 온 정신을 집중하면 세상의 번뇌를 잊을 수 있어
좋습니다.
-현업에서 한 발 물러나 현재는 고문으로 계신데 평소 생각하고 계신
"고문론"은 어떤 겁니까.
<> 배고문 = 글쎄요.
특정한 일을 맡고 있지 않으면서 조직에 기여하기를 기대하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 대담 = 유화선 < 부국장 대우 / 산업1부장 >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31일자).
그룹계열사 사장들이나 임원들의 자문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배고문은 그룹 일뿐 아니라 대외활동도 활발하다.
15년간 조세행정과 세무행정을 하면서 명성이 자자했던 그는 퇴임
세무공무원들의 모임인 세우회 고문으로 세무관료의 대부역할을 하고 있다.
또 이홍구신한국당대표 이회창신한국당고문과 경기고 49회 동기동창인
그는 경기고 총동창회 부회장과 서울대학교 동창회이사도 맡고 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지난 63년 청와대 비서실 근무로 공직을 시작,
66년에는 국세청 첫 총무과장으로 국세청 탄생의 산파역을 맡기도 했다.
80년 국세청차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나 83년까지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을 역임했다.
83년 당시 효성그룹 계열이었던 대성목재 사장으로 재계에 입문,
효성물산 동양폴리에스터 사장 효성그룹 종합조정실장을 거쳤다.
공사다망한 그를 서울 공덕동 효성빌딩 15층 그룹고문실에서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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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정부가 세법개정안을 내놓았지요.
오랜 세월 조세 정책과 세무행정을 다루신 원로로서 이번 개정안을
보는 눈은 남다르실텐데요.
<> 배고문 = 이번 세법개정은 근본제도를 뜯어 고치는 개혁적 세제개편도
아닌데 뭘요.
다만 면세점을 올리는 것은 저소득 근로자들의 세금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좋지만 응능부담 원칙이 점점 더 손상되는 것 아닌가 걱정스럽습니다.
소득세는 돈을 많이 번 사람은 세금을 많이 내고 적게 번 사람은 적게
내야 하는데 세금을 한 푼도 안 낸다는 건 바람직한 게 아니지요.
세금면제나 세금경감은 조세원칙보다 더 우선해야 할 정책과제가 있을
때만, 그것도 신중히 해야 합니다.
-세무공무원으로 계실 때는 정말 개혁적 세제개편을 많이 하셨지요.
<> 배고문 = 그렇습니다.
지난 74년 종합소득세 76년 방위세 그리고 77년에 도입한 부가가치세제
등을 만드는 데 관여했습니다.
그 때 만든 세제골격이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부가가치세를
도입할 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 하마터면 좌초될 뻔 했지요.
-부가가치세를 도입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배고문 = 조세체계를 단순화하고 세정을 과학화하기 위해서였지요.
당시 간접세는 8개 세목으로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에 세수관리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를 단순화해 안정적인 세수를 확보하자는 게 부가가치세제 도입의 근본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반대여론이 들끓었나요.
<> 배고문 = 그 때나 지금이나 새로운 세제를 만드는데 국민들이 찬성한
일은 없으니까요.
또 부가세제 도입 당시가 마침 선거철이라 정치바람을 타기도 했지요.
어떤 야당 국회의원은 부가세가 도입되면 큰 일 난다고 떠들었어요.
지역구여론이 아주 나쁘다며 결사 반대의 입장을 취했지요.
그러나 그 국회의원의 지역구는 농촌지역이라 과세자가 1백명 정도 밖에
안됐어요.
제도의 본질도 모르면서 여론에 영합하는 사람이 정치인들 중엔 참 많구나
하는 걸 그 때 느꼈습니다.
-그래도 박정희대통령이 밀어붙였다지요.
<> 배고문 = 박대통령의 예지력이 없었다면, 그리고 행정력이 우위에
서 있지 않았다면 부가가치세는 빛을 볼 수가 없었겠지요.
-결과적으로 부가가치세 도입은 잘했는지 모르지만 행정력으로
여론을 완전 무시한 건 아닙니까.
<> 배고문 =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론과 국민들의 세부담을 감안해 당초계획보다 세율을 대폭 낮췄습니다.
폐지되는 세목의 세수규모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13.5%의 세율을
적용해야 했지요.
하지만 박대통령이 국민의 세부담이 너무 커진다며 세율을 10%로 내릴
것을 지시했습니다.
-부가가치세제는 간단히 말해 마진의 10%를 세금으로 징수한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상인들은 너도나도 내야 할 세금만큼 아니 그 이상 물건값을
올려 받았다지요.
말하자면 부가가치세제가 물가인상을 부채질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 배고문 = 마진에 10%의 세율을 적용해 가면 결국은 최종 소비하는
사람만 세금을 물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통과정만 투명하고 세금계산서만 제대로 발급되면 부가세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유통체계나 세금계산서 문화등 제반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가세제는 너무 성급했다고도 볼 수 있지요.
부가가치세 때문에 물가가 오르고 경제가 나빠져 부마사태가 일어났다고
분석하는 학자들도 있지 않습니까.
<> 배고문 = 그같은 분석은 비약이겠지요.
부가가치세는 오히려 국가재정이나 세정과학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봐야
옳습니다.
그런 확신 때문에 이 세제를 도입한 거고요.
-요즘의 세정이 정말 과학화 선진화 됐다고 보십니까.
<> 배고문 = 현저히 향상됐지요.
전산화도 상당히 진척됐고요.
이제는 웬만한 세금고지서는 모두 전산으로 발송돼지 않습니까.
세정과학화가 많이 진척된 게 사실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아무래도 과학화 됐겠지만 그래도 세도가 날뛰지
않습니까.
지난 94년 인천에서 세무공무원들이 지방세를 포탈한 데 이어 최근에는
국세청에서도....
<> 배고문 = 틈만 생기면 부정을 저지르려는 게 사람의 심성인지도
모르지요.
-국민들의 납세의식은 어떤가요.
역시 틈만 있으면....
<> 배고문 = 납세의식도 많이 좋아졌지요.
우선 탈세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 들었지 않습니까.
대신 절세책을 강구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지요.
그러나 절세는 나쁜 게 아닙니다.
세법은 복잡하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면 안내도 되는 세금을 내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공인회계사나 세무사 등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절세를 하는 것이
어떤 점에선 장려할 만한 일이지요.
-법망을 피해가려는 사람과 이를 막으려는 조세행정력과의 긴장관계는
여전하다는 말씀이군요.
<> 배고문 = 그렇습니다.
세금은 아무리 그 목적이 훌륭하더라도 납세자의 입장에서 보면 돈을
빼앗긴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지요.
기꺼운 마음으로 세금을 내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나는 항상 후배 공무원들을 만나면 세금을 내는 국민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봉사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조언합니다.
세무공무원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금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국세행정은 목소리가 낮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겁주는 표현을 해서는 안되고 조용하고 부드러워야 합니다.
고질적인 범법자는 엄단해야 하지만 대체로 선량한 납세자에게는 편안하게
해줘야 합니다.
-그래도 국민들은 세무서에 가기를 꺼려하지요.
아마 경찰에 가기보다 더 싫어할 겁니다.
<> 배고문 = 사실 납세자가 세무서를 자주 들락거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요.
인간은 누구나 돈에 대한 욕심이 있기 때문에 세무공무원은 가급적
납세자와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는 게 좋습니다.
직접 대면하지 않고 문서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투명한 세무행정을
위해 필요하다는 겁니다.
최근에는 그렇게들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얼마전엔 출국세 신설문제로 시끄러웠지요.
백지화되긴 했지만 목적세를 너무 남발하려는 정부의 자세가 문제
아닙니까.
<> 배고문 = 목적세는 가급적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세정이나 세제가 특수한 분야의 이익을 위해 활용되는 것은 별로
바람직스럽지 않기 때문이지요.
공평성이나 형평성 타당성 등 세정의 원칙을 지키는 범위내에서 예외가
있을 수 있지만 남용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세무관료로 계시다 기업쪽으로 자리를 옮기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 배고문 = 후배들에게 자리를 비켜 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효성그룹에 입사한 것은 조석래회장과 경기고등학교 선후배사이로
이전부터 친분관계가 있었고 또 송인상동양나일론회장의 권유도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공직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민간 기업에서 생활하면서 혹시 갈등 같은
건 느끼지 않았습니까.
공직생활과 기업생활은 차이점이 많겠지요.
<> 배고문 = 한마디로 공과 사의 차이지요.
그러나 그건 과정에 불과합니다.
국가 사회에 봉사한다는 결과는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20년 가까운 공무원 생활중 아쉬운 점은 없었습니까.
<> 배고문 = 정부에 있을 때는 내가 제일이고 내가 다 잘아는 줄로
생각해왔는데 기업에 와서 보니 내가 너무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업을 이해했었다면 공무원 생활을 더 훌륭히 했었을 텐데...
그래서 요즘 후배공무원을 만나면 기업의 입장을 좀 더 이해하도록
노력하라고 충고합니다.
-사회의 흐름을 보면 과거에는 관이 민을 주도했지만 현재는 민간부문이
앞서간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 배고문 = 부분적으로 그런 면이 있지요.
특히 대기업에 있는 맨파워는 대단합니다.
세계화 기업가정신 등 관이 민에게 배울 게 많지요.
시대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순발력이 필요한데 관이 그점에서 민에
뒤지기 때문이지요.
-요즘 새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 세대의 사회적응력은 어떻습니까.
<> 배고문 = 대단하지요.
상당히 발랄하고 우수한 인재들이 많으니까요.
동기부여를 해주고 잘 리드해 주면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많은 능력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너무 자기중심적이라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시대상황에 대한 적응력을 말씀하시면서도 "심화 가화 인화" 등 3화를
가훈으로 삼고 있을 정도로 화를 강조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심화는 정확히
어떤 뜻입니까.
<> 배고문 = 자기분수를 알고 만족하며 사는 것이지요.
현실을 불평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책임을 지고 살자는 뜻입니다.
-좌우명인 "성의정심"은 또 무슨 의미입니까.
<> 배고문 = 그건 소학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성실하고 마음이 반듯해야 한다는 뜻이죠.
국세심판소가 74년 설립될 당시 국무총리였던 김종필씨가 휘호를 하나
써 준다고 하길래 "성의정심"을 써 달래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국세심판소에는 이 글귀가 걸려 있을 겁니다.
국민의 세금문제를 다루는 국세심판소에 딱 어울리는 글귀지요.
-붓글씨가 상당히 수준급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 배고문 = 수준급은 아니고 그냥 취미로 즐길 뿐입니다.
어려서 할아버지께 배운겁니다.
붓을 잡고 붓끝에 온 정신을 집중하면 세상의 번뇌를 잊을 수 있어
좋습니다.
-현업에서 한 발 물러나 현재는 고문으로 계신데 평소 생각하고 계신
"고문론"은 어떤 겁니까.
<> 배고문 = 글쎄요.
특정한 일을 맡고 있지 않으면서 조직에 기여하기를 기대하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 대담 = 유화선 < 부국장 대우 / 산업1부장 >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