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동향은 늘 우리의 첨예한 관심 대상이 아닐수 없다.

극심한 북한의 식량난이 지난 7월의 폭우로 더욱 악화되었다는
소식에서부터 우리측이 제의한 4자회담에 대한 그들의 반응 또한
예외없이 주목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일본 사이타마대학 교수이면서 저명한 북한문제
전문가인 요시다야스히코 (60)씨가 북한 주체과학원 초청에 따라
일조학술우호사절단의 일원으로 지난 8일부터 6일간 북한을 다녀왔다.

본사 이봉구특파원이 요시다교수와 만나 북한의 최근 실상을 들었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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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여러차례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 아는데.

"이번이 세번째다.

재작년부터 매년 한차례씩 방문하고 있다.

지난해는 북한 수해대책위원회의 초청이었고 나머지 두번은
주체과학원의 초청이다.

이번 사절단은 평양 개성 판문점 등을 둘러보았지만 나는 유일하게
북한당국의 안내로 황해북도 금천군과 사리원 등지의 수해지역을
돌아볼 수 있었다"

-혼자서만 돌아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해 수해지역을 둘러봤기 때문에 올해상황은 어떤지 보고 싶어
시찰요청을 했더니 받아들여졌다.

지난해 방문때 계란과 바나나를 갖고가 수해지역 어린이들에게 보내준
일이 있는데다 내가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차원에서의 식량지원을
적극 주장해온 점도 좋은 인상을 준것 같다"

-북한에서의 일정을 날짜별로 간략히 설명해달라.

"나고야에서 고려항공 특별기편으로 8일 평양에 도착해 북한측이
준비한 4대의 벤츠에 탑승해 만수대광장에서 김일성주석의 동상을
참배했다.

참배는 의례적인 것이다.

9일에는 관계자들로부터 두만강개발계획에 대한 설명을 듣고 탁아소를
방문했으며 10일엔 김일성생가와 지하철을 둘러봤다.

11일에는 판문점과 개성을 다녀왔고 다른 사람들이 주체사상에 대한
설명을 들은 12일 수해지역을 갈 수 있었다"

-수해지역 상황은 어떠했나.

"황해북도와 황해남도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수해를 당했기
때문에 대단히 처참했다.

지난 7월말 내린 비는 지역에 따라 강수량이 다소 다르지만 대략
400~1,000mm였다고 한다.

전답이 강물을 타고 떠내려온 흙에 뒤덮여 도저히 쌀을 재배할 수
없는 곳이 많았고 아직도 전답에 물이 흥건히 고여있는 곳도 적지
않았다.

금천군에서 주민들의 말을 들으니 전체전답의 70~80%가 이번 수해로
못쓰게 됐다고 한다"

-구체적인 피해상황은.

"북한 정부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북한의 총경작면적은 150만ha인데
지난해 수해에서 3분의 1인 50만ha가, 올해는 6분의 1 가량인
28만8,000ha가 각각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지난해의 경우는 이재민 520만명 사망 70명, 올해는 이재민 327만명
사망 86명이라고 했다"

-금액으로 따진다면 어느정도인가.

"17억달러 가량이라고 한다.

지난해의 경우는 일방적으로 150억달러의 피해를 입었다고 발표해
과장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하지만 올해는 유엔 관계자들도 함께 조사를
했기 때문에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

-실제로 식량부족이 심각했는가.

"금천군 하북리라는 마을에서 점심식사대접을 받았는데 옥수수
감자 고구마에 물만 나왔지 쌀구경을 하지 못했다.

나에게 내놓은 식사가 주민들이 평소에 먹는 그대로라고 했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이번 피해를 극복할 수 있지만 원조를
해준다면 고맙게 생각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북한주민의 영양실조상태가 심각하다고 보도하고 있는데.

"한국인들에 비한다면 주민들이 상당히 여윈 편이지만 어린이들은
의외로 활기에 차있었다.

탁아소를 가보았더니 어린이들이 음식을 나눠먹고 춤도 추고 하면서
재롱을 피웠다.

사리원 근처에서 산보를 나간 일이 있는데 주부들이 삼삼오오 모여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은 북한돈으로 10전, 일본돈으로 따진다면 5엔이라고 했다.

주부들에게 물으니 세탁도 하고 쇼핑도 하면서 지낸다고 했고 어린이들이
강물에서 멱을 감는 것도 보았다.

지극히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고 있고 여유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엔조사가 과장됐다는 뜻인가.

"식량부족을 강조하다보니 다소 부풀려진 면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한국이 주장한 것처럼 북한의 식량비축이 충분한 것은
결코 아니다.

병사들도 야윈 모습이어서 군대에도 비축식량이 거의 없는 것이
분명하다.

정말 문제는 지금이 아니라 감산이 불가피한 올가을 수확기 이후의
겨울부터 봄까지를 어떻게 버티느냐 하는 것이다.

이때는 정말 국제적인 지원이 없이는 극복키 힘들 것이다"

-평양의 식량사정은.

"평양도 배급이 1개월정도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배급량도 종전의 절반수준으로 줄었다.

평양에서 중상류정도의 집을 방문했는데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고
있었고 나를 대접한다고 내놓은 것도 옥수수였다.

이집주인은 시골에 있는 처가에서 옥수수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정상적으로는 하루 600g이 배급돼야 하지만 최근엔 300g 이하이며
때로는 150g 정도밖에 공급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양은 쌀 옥수수 감자 등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한국이 쌀을 지원한 사실을 주민들은 알지 못한다고 하는데.

"사실이다.

주민들은 쌀이 모두 중국에서 온줄 알고 중국에만 감사하고 있다.

일본이 쌀을 보냈다는 사실도 전혀 모르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보낸 쌀이 중국쌀로 둔갑한 셈이다"

-다음달 나진.선봉지역투자설명회가 계획돼 있는데 진전상황은
어떠했나.

"나진.선봉에도 가고 싶다고 신청했지만 가지 못했다.

공항이 정비중이고 호텔도 아직 숙박이 불가능한 등 인프라가
안돼있다고 했다.

기차로 갈경우는 19시간이나 걸리고 자동차도로도 일부불통이라고
했다"

-북한은 나진.선봉의 성공가능성을 어느정도로 보고 있었는가.

"반드시 성공시킬 자신이 있다고 말했지만 현재상태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멘스 등 서구자본이 일부 들어와 있다고는 하지만 역시 한국과
일본이 힘을 넣지 않으면 어렵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좀더 상황을 보자는 식이어서 투자가 완전
제로 상태다.

일본의 투자는 국교정상화 없이는 힘들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과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제의한 4자회담에 대해
북한에서는 아직도 구체적인 대답이 없다.

"북한은 한국 북한 미국 중국 등을 모두 포함한 4자회담이 아니라
중국을 제외한 3자회담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조선노동당 국제담당서기로 일하는 황장엽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북한으로서는 사실 미국만 상대하고 싶어하지만 한국을 끼워넣는
것이 어쩔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3자회담에 대해 일부 보도가 나오자 북한에서 곧바로
부인하지 않았는가.

"내입을 통해 3자회담에 대한 이야기가 알려지자 북한당국으로부터

"요시다선생, 황서기는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거짓말 하지마시오" 라는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황이 그런 말을 한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나는 메모까지해
놓았다.

뿐만아니라 황은 북한이 3자회담을 받아들일 시기에 대해
"가을이후"라며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세번에 걸쳐 방문하면서 북한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다고 느꼈는가.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언론보도 등과는 달리 오히려 북한이
점차 차분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려움이 장기화함에 따라 어려움에 적응해가는 측면이 있는데다
미국 등과의 관계가 다소 나아지고 있는 점도 자신을 회복시켜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