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는 계속 하강곡선을 그리는데 전세값이 너무 치솟아 사람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이미 서울 일부지역이긴 하지만 집값도 고개를 들고 있다.

전세값 상승이 결국에는 걷잡을 수 없는 집값 폭등을 몰고오는 상황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80년대말 그런 악몽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지난 5-6년동안 사람들은 내집마련걱정은 별로 않고 살아왔다.

신도시건설이 이어지면서 집은 계속 공급되고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면
미분양아파트가 널려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내집마련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집에 대한 구매수요는 줄어들 수 밖에 없었고 수요감소는 집값을
계속 안정시켰다.

여기에 새로 분양되는 아파트의 분양가나 기존 주택가격의 차이가
없어져 분양의 메리트를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살기 좋고
편리한 전세집을 찾았다.

어떤 사람은 집팔아 전세들고 남는 돈으로 주식투자 등 재테크로
눈을 돌렸다.

미분양아파트의 누적으로 집은 남아돌아가는데 전세수요는 계속
늘어 전세값만 오르는 아이러니가 그래서 연출된 것이다.

바로 "주택사이클"의 특성이다.

주택사이클의 정점은 집값 폭등이다.

전세값 상승으로 매매가와의 차이가 좁혀지면 구매수요가 다시
살아난다.

이게 한번 불붙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집가진 사람과 집없는 사람들 사이에
깊은 골을 파놓는다.

내집마련의 꿈을 앗긴 서민들의 박탈감은 사회불안의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

80년대말에도 그랬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는 사람도 많다.

이제는 주택보급률이 85%에 이르고 있고 주택을 "소유"가 아니라
"주거"의 대상으로 보는 인식이 확산돼 있으며 투기를 막는 각종
규제장치로 아예 가수요를 일으킬 소지가 없어져 집값파동은 우려할게
아니라는 분석이다.

충분히 일리있는 얘기다.

정부의 이번 전세값폭등사태에 대한 대응도 그런 인식에 기초해 있는
것 같다.

"전세가격 안정대책"이라는 걸 마련했으나 전세값을 많이 올린 주택
소유자의 명단을 국세청에 통보해 소득세가 많이 나오도록 하겠다는
정도이다.

그런 방안이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순진한 사람은
별로 없다.

하긴 철저한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전세시장에서
값이 뛴다고 뚜렷한 대책을 찾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나 과연 앞으로 집값 파동을 우려하지 않아도 될까.

아니 결코 그렇지 않다.

집값 폭등의 악몽이 얼마든지 재연될 소지는 있다.

예나 지금이나 주택을 둘러싼 문제는 전국 인구의 3분의1이상이
몰려사는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보급률은 이제 70%를 약간 넘어선 정도이다.

주택을 주거의 대상으로 보는 인식이라는 것도 별로 믿을게 못된다.

그건 집값이 안정돼 "소유"의 메리트를 기대하기 어려울때의 얘기다.

전세값이 오르고 집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오면 숨어있던
"소유수요"가 한꺼번에 표출될 수 있다.

그렇게 되는 경우 집값 파동의 악순환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집없는 많은 사람들은 그걸 걱정하고 있다.

벌써 집값이 꿈틀거리고 있는게 악순환의 조짐이다.

결론은 하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방치할 경우 사태는 정말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교훈을 먼데서 찾을 것도 없다.

80년대말의 주택 2백만호 건설프로젝트는 "정권적 차원"에서 추진된
것이었다.

당시 집없는 사람들은 "안정된 주거공간의 확보"라는 희망을 앗기면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고 그것이 심각한 사회불안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택공급확대정책은 아직도 유효하다.

지금처럼 매년 50만-60만가구의 아파트를 계속 짓는다 해도 10년이
지나야 주택보급률 1백%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집값 상승의 직접적인 요인이 되는 전세값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책수단이 마련돼야 한다.

정부는 지금 서둘러 해법을 찾아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는 아예 통제수단마저 없는게 주택시장이다.

주택시장의 악순환은 바로 경제의 악순환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과소비열풍도 따지고 보면 반복된
집값 파동의 여파이다.

주기적인 집값 파동의 그늘에서 독버섯같은 투기가 뿌리를 내렸고
가진 사람들의 배에 거품만 잔뜩 채워주었다.

투기의 과실인 불로소득으로 배불린 천민재산가들의 행태가 바로
호화 사치에다 보신.도박관광이다.

그게 사회전반의 거품을 만들었다.

전세값 집값 올라서 좋은 건 아무것도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