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회림동양화학명예회장은 재계에서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불린다.

지금도 이면지를 노트로 활용하고 있을 정도로 근검과 절약정신이
생활화돼 있어서다.

절약정신외에 개성상인의 덕목은 부지런함과 신용이다.

그는 이런 정신으로 지난 37년 동안 동양화학을 계열사 20개 매출
1조5천억원의 그룹으로 키워놓았다.

이명예회장은 송도보통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32년 개성의 포목도매상인
강형근상점에서 점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37년에는 건복상회를 설립 사업을 시작했고 59년 동양화학을
설립, 남이 안하는 기초화학사업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아무도 엄두를 내지 않는 그러나 꼭 필요한 사업분야를 찾아 결국
1위가 되고야 마는 그의 사업방식은 바로 개성상인다운 면모라고 주위에서는
말하고 있다.

지난 69년에는 막대한 초기 투자비를 이기지 못해 부실기업으로
지목돼 집까지 팔면서 회사를 살리려했던 아픔도 겪었다.

이명예회장은 지난 70년대말부터 동양화학은 장남인 이회장에게 맡기고
그룹계열사 간부회의만 1주일에 한 번 참여하는 선에서 경영활동을
최소화해왔다.

대신 개성시민회와 인천 송도학원 등 고향과 지역과 관련된 일에만
전념해왔다.

그는 타고난 건강체질이지만 독특한 건강유지법을 갖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폭포수 맞기 눈오는 날 맨발로 뛰기 등이 그것이다.

어린 시절 개성에서 즐겨찾던 박연폭포를 잊지 못해서다.

< 권영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