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과는 금계가 좀 야하게 옷을 입었다고만 생각했지 그옷만 벗으면
알몸이 드러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설과가 주뼛주뼛하며 술상을 가운데 두고 금계 맞은편에 앉았다.

그런데 금계가 자리를 조그씩 옮겨 설과 옆에 붙어 앉아 술잔에 술을
따르며 안주도 집어주었다.

설과는 비록 이미 술에 취해 후각이 둔해져 있었으나 금계에게서 풍기는
살냄새와 연지, 분 냄새들이 워낙 진하고 자극적이라 어찔 현기증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암사슴도 수사슴을 유혹할 때 이 정도의 냄새는 풍기지 않을 것이었다.

설과가 술에 더욱 취해 몸을 잘 가누지 못하게 되자 금계가 슬그머니
설과의 손을 잡아 옷 사이로 혀옇게 드러난 허벅지 위에 얹었다.

설과가 무심결에 손을 조금만 밀어넣으면 금계의 은밀한 부분에게까지
닿을 판이었다.

설과는 취중에도 느낌이 이상하여 손을 움직거려보다가 금계가 속속곳을
전혀 입고 있지 않은 사실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그러자 번쩍 나서 손을 거두고 다리에 힘을 주며 벌떡 일어났다.

금계가 엉겁결에 설과의 두 다리를 부둥켜안고 늘어졌다.

그바람에 옷이 젖혀져 금계의 알몸이 거의 드러나고 말았다.

설과는 그 모습을 보고 더욱 기겁을 하여 방문을 박차고 달아나버렸다.

금계는 부끄럽고 분통하여 그 당장은 죽어버리고만 싶었다.

이런 와중에서 금계는 설과가 사실은 설반의 애첩 향릉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설반도 어떤 때는 금계 자기보다 향릉을 더아끼는 둣하여 안 그래도
향릉에 대해 시기심이 불타고 있었는데, 설과까지 그러니 금계는 향을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하루는 금계가 설부인에게 향릉이 자기 방에와서 함께 생활하도록
해달라고 하였다.

설부인은 금계와 향릉의 사이가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금계의
부탁을 의지하게 여기자 금계는 그동안 향릉을 미원하고 구박한 것을
사과하는 뜻에서 그런다고 하면서 끝내 설부인을 설득하였다.

마침 감기를 심하게 앓고 있던 향릉이 금계의 방으로 가서 같이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금계는 보섬으로 하여금 향릉을 위해 국을 끓여 오게
하는 등 향릉을 위해 국을 끓여 오게 하는 등 향릉을 극직히 간호하는
척하였다.

그날도 보섬이 금계와 향릉을 위해 국을 두 그룻 끓여 주었는데
얼마후에 방에서 향릉의 비명이 들려왔다.

보섬이 처음에는 금계가 향릉을 때리거나 향릉의 국에 독 같은 것을
넣어 죽이려 했나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보섬이 다른 시녀와 하인들과 함께 방으로 뛰어들어가면서
들은 향릉의 비명은 그와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금계 아씨가 죽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