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식 <한국무역협회 이사>

"공장을 우리나라에 짓지않고 왜 남의 나라에다 짓는가"

고급 승용차의 대명사격인 벤츠사의 근로자들이 항의데모를 하는
내용이다.

벤츠사가 SMH사와 손잡고 예쁘고 깜찍한 소형승용차 S카를 생산키로 하고,
공장을 독일보다 임금이 싼 프랑스 로렌지방에 세우기로 했기 때문이다.

SMH사는 손목시계를 패션상품화한 스워치를 개발하여 스위스 시계산업을
일본의 도전으로 부터 구해낸 회사이다.

몇년전 유럽근무당시 월스트리트저널 유럽판에 난 이런 내용의 기사를
보면서 하늘에 침뱉는다는 금언을 떠올리던 기억이 난다.

벨기에의 한 무기제조업체는 냉전종식의 여파로 판매가 급격히 줄자
회사를 처분키로 했다.

세계에서 오직 중국만 원매자로 나섰는데,근로자의 절반을 중국인으로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가뜩이나 실직자가 많아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벨기에 정부로서는
도저히 수락할 수 없는 조건이었지만 이 회사의 노조는 정부당국에 대해
수락압력을 가했다.

외국인 추방을 내세우는 극우정당이 지지율을 높여가고 있는 사회분위기를
감안한다면 절반이나마 일자리를 건지려는 노조의 노력은 가히 처절하다.

도요타 닛산등 많은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은 왜 영국에 공장을 세웠을까.

영어가 통한다, 땅값이 싼데다 매입자금까지 지원해 준다, 행정규제가
없다, 기술이나 생산성을 감안하면 임금은 오히려 싼편이라는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 여건에다 무파업 조건까지 곁들여진다면 어찌 투자를
마다할 것인가.

영국의 일자리 끌어들이기 노력은 경탄스럽기까지 하다.

최근 영국정부는 자국에 외국인투자가 늘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노조가입
근로자수가 79년 1,300만명에서 지난해 800만명 미만으로 줄어든 것을
원인으로 꼽으면서 외국기업이 전체고용의 20%를 담당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유럽 근로자들은 임금이나 근로조건 보다는 일자리 확보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정부의 외국인투자 노력 역시 이에 못지않다.

공장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이를 파격적으로 싸게 해주는 것은
물론 각종 세제.금융 지원과 함께 일정한 조건을 갖추면 임금까지도
낮은 수준으로 묶어주는 소위 사회적 덤핑마저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부 고위당국자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직접 뛰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우리나라 S그룹이 영국 윈야드 전자복합단지 기공식을
가졌을 때 이례적으로 엘리자베스여왕 내외가 참석했다.

그런가 하면 L그룹이 영국 웨일스에 조성하는 국내 최대규모인 26억달러
규모의 "웨일스 종합단지조성"을 메이저 영국총리가 기자회견을 통해 직접
밝힌 바 있다.

이밖에도 유럽에서는 정부수반은 물론 상공 재무장관들이 직접 공항에까지
나가 투자기업 관계자를 영접하는 일이 자주 있다.

지난 3월 존 메이저 영국총리가 투자유치를 위해 자국 기업인들을 데리고
방한했을 때의 일이다.

리셉션장에서 주한 영국대사가 직접 뛰면서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고생이 많다고 격려의 말을 건네자 "나의 봉급이 누구로부터
나오는데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는 일화를 전해듣고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영국등 세계각국의 투자환경 조성이나 투자유치 노력은 이정도다.

그렇다면 이들 나라와 비교할때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투자는 95년중 세계 해외투자금액 3,250억달러의
0.6%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현재 세계 약4만개의 다국적기업들이 20만개 내외의 해외 생산라인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세계 12대 무역대국인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
투자건수는 6,000여건에 불과하다.

92년 우리의 해외투자가 외국인의 국내투자를 앞선이래 매년 그 격차가
확대돼 금년 상반기중에는 이미 해외투자가 외국인투자의 2배를 넘고 있다.

규모면에서는 건당 평균 300만달러에 불과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몇몇 대기업의 투자규모를 보면 건당 10억달러내외로 대형화하는
추세다.

기업의 해외투자는 기술습득을 위해, 수입규제 우회를 위해, 시장확보를
위해, 또는 생산비절감을 위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필자의 그릇이 작아서 그런지 모르나 이러한 대형 투자기사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엄청난 일자리가 또 빠져나가는구나"하고.

최근 런던비즈니스스쿨이 유럽에 진출한 비유럽계 100대기업에 대해
조사해본 결과를 보면 이렇게 해외로 빠져나가는 일자리수를 짐작케 해준다.

이 조사에 따르면 94년말 현재 우리나라의 S및 D그룹이 각각 28위,
75위로 랭크되어 있는데 S그룹의 경우 현지고용 인원이 약 5,000명에
달한다.

이제 세계경제는 국경이 허물어져가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기업이라고 우리땅에만 있으라는 법도,붙잡을 수도 없다.

오는 21세기에는 외국인 투자유치 경쟁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이제 근로자는 물론 정부가 인식을 새롭게 바꾸지 않으면 우리땅에
몇 개의 기업이 남아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근로자는 기업의 경쟁력 제고가 바로 자신의 일터를 보장한다는 점을
명심하여야 하며 정부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사업하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도록 국내 기업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