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전대통령 비자금사건에 연루된 일부 대기업회장들에게 유례없이
실형이 선고됐다.

이는 당초 기업인에 대해서는 관대한 처분이 내려질 것이라는 일반적인
관측을 완전히 뒤엎은 것으로 재계에 일파만파의 충격파를 던져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경제발전의 기여도를 이유로 "정상참작"을 기대했던 그룹들은 향후
수습에 상당히 노심초사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일부장판사는 양형이유를 통해 "전직대통령이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고 있는 마당에 돈을 준 기업인들이 경제발전기여를 이유로 언제나
가벼운 형벌을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이번에 실형을 선고받은 대기업체 대표들은 지금까지 뇌물
공여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적이 있거나 뇌물공여액이 많은 기업인들
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나타난 재판부의 강경한 태도에서 이번 비자금사건의 여파가
얼마나 컸는지를 여실하게 읽을 수 있다.

이번 사건이 정치권과 경제계에 대한 국민의 공분을 산데다 뒤이어 12.12및
5.18사건에 대한 사법심판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특히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무시할 수 없는
분위기가 크게 작용했으며 그것이 일부 기업인에 대한 "중형선고"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이에따라 이번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정치권인사들과 달리
재계에 "가벼운" 처분을 내릴 경우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될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해석
된다.

그러나 이날 재판부가 실형을 선고받은 기업인들에 대해 법정구속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아직도 "관대한" 처분의 여지가 남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재판이 2심, 3심까지 갈 경우 여러가지 요인을 감안해
최종적으로 "선처"를 기대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대두되고 있다.

어쨌든 이번에 실형을 선고받은 기업인들은 아직도 유죄가 확정된 상태가
아닌 만큼 해외출장등 경제활동에 대해 법률적인 제약은 받지 않을 전망
이어서 해당 기업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다만 항소심등 향후 재판일정에 따라 재판부와 사전협의를 거치는 등 다소
불편읕 감수해야할 형편이다.

< 조일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