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진출에 왕도는 없는가.

한중수교 4주년(8월24일)이 됐는데도 이같은 물음은 끊이지 않는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8할 이상이 낭패를 당했다니 그럴만도 하다.

전세계 각국이 탐을 내는 중국시장이지만 그만큼 함정도 많다는 얘기다.

실패기업은 사업부지를 비싸게 임차하고 까다로운 중국당국의 사업승인
요건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했다가 3년도 안돼 손들고 나온다.

중국사회의 복잡하 의사결정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판로와 원자재구매에
허점을 드러낸것도 실패기업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열악한 사업환경속에서 짭짤한 재미를 본 기업도 상당수 있다.

그 중 롯데리아는 중국내에서 고비가 닥칠때마다 현실여건속에서 이를
슬기롭게 극복한 몇 안되는 기업으로 통한다.

롯데리아의 대중국진출과정을 통해 중국의 사업여건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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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리아가 12억 중국인을 상대로 햄버거를 팔아야겠다고 생각한
시기는 92년8월. 1인당 국민속득 1만달러를 고비로 햄버거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 현상인데다 경영수지가 좋을때 신규시장개척에
나서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서울본사 해외사업부장등 3명은 비행기가 아닌 배로 중국으로 향했다.

이들의 임무는 사업성검토 현지사업환경조사 지가조사 파트너물색등.

10여일간의 출장중 이런 조사를 완벽하게 마무리하기엔 역부족이어서
이후에도 3~4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승산없는 사업에 비용만 낭비한다"는 사내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시장의 속성을 파악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이러하기를 10차례.93년3월 파트너와 사업의향서를 교환했다.

대부분 한국기업들이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의향서를 교환하는 것과
큰 대조를 이루고 있다.

롯데리아는 의향서를 교환한 즉시 점포 물색에 들어갔다.

당시 북경의 상업용지를 20년 장기임대할때의 값이 평방m당 4만원(평당
한화 1,200만원 수준)으로 서울 신도시상가의 평당 땅값 700만원보다
비쌌다.

이렇게 비싼 땅도 한국처럼 소유가 아닌 20~50년의 임차이니 경영진이
납득하기 어려운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때가 첫 고비였던 셈이다.

"그렇게 비싼 값으로 임차한 부지에서 장사가 되겠느냐"는게 대부분
경영진의 반응이었다.

어쩌다 "목소리 큰"사람이라도 있으면 백지화되기 쉽상이다.

롯데리아가 사업장 선정이 마무리될쯤에 지분구조와 이익배당등의
내용을 담은 계약서 성격의 합동작성에 들어갔다.

그러나 롯데리아는 10여일이면 될것으로 예상했던 합동(최종계약서)과
정관 작성을 시작하면서 "역시 중국"이라는 사실을 실감해야 했다.

중국측 파트너는 동사회(이사회)의 의결을 만장일치로 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파트너는 합병과 증자 매장확대 회사청산 총경리의 임명등을 중국측과
협의하고 중국의 동의가 없으면 할수 없도록 하자는 만장일치안을 굽히지
않았다.

롯데측은 난감했다.

그러나 롯데는 사회주의체제에 젖은 중국파트너에게 "경영은 상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전세계 롯데그룹 관계사 회의에 참석해 기업인의 자세를 배우자"며
국제회의에 참관할 기회를 마련했다.

외교관 출신인 중국파트너는 의외로 자본주의 경영을 이해하고
만장일치안을 철회했다.

그러나 끝난줄 알았던 만장일치안은 다음날 번복됐다.

극비리에 협상장 근처에 와있던 대외경제무역위원회 직원이 "그건
안돼"라는 사인을 보냈던 것.

롯데는 즉시 "어제까지 합의한 사항을 하룻만에 번복하는 협상은 할수
없다.

사업의 장래가 의심스럽다"고 반박하고 나선것은 물론이다.

그러자 중국측 파트너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업허가를 받을수
없다"면서 인근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말을 실토했다는 것이다.

계약서와 합동서 협상을 위해 북경출장을 7회나 다녀왔다.

2개월만에 140여개 조문의 합동과 정관을 만들었다.

그러나 곧 서명하지는 않았다.

우선 조문을 중국어에 능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직원에게 보여주며
검토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래도 안심이 안된 롯데리아측은 중국변호사에게 들고 갔다.

그 변호사는 수수료 5,000달러를 요구했다.

망설이다 북경대 법학과 교수에게로 발길을 돌렸다.

북경대교수는 합동과 정관의 문제점을 지적해줬다.

코마(,)하나로 회사경영에 중대한 차질을 빚을 오류를 발견한 것도
큰 수확이었지만 수수료의 차이도 엄청났다.

100달러선에 정밀 검토가 가응했기 때문이다.

롯데리아측은 "대부분의 국내 기업이 관련업무를 처리할 때 최적의
중국기관이나 전문가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경영진이 중국의
특수한 사정을 모를 경우 실무자가 비용의 일부를 착복한 것으로 오해받아
문책을 당하기 일쑤라고 말한다.

롯데리아가 장기임차한 4층건물의 철거비용은 이런 사례의 하나다.

롯데리아는 철거비협상에 들어가면서 7만원을 제시한데 반해 중국측은
50만원 안을 들고 나왔다.

롯데측은 이정도의 갭이면 25만원 선에 타결될 것으로 예산하고
20만원선에 타결되면 만족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결과는 12만원에 타결됐다.

협상이 끝난뒤 "도대체 얼마를 받을 속셈이었느냐"고 묻자 중국측
관계자는 "10만원"이라고 대답했다.

설비의 중국내 반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생산설비를 수입할때 요령껏 서류를 작성하면 관세를 대폭 절감할수
있는 사회가 바로 중국이라는것.

한국에서 사용하던 제조시설을 이전하는 경우 중고기계로 표시하면 고율의
관세를 물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을 피하는 방법이 있다.

"우선 제품명이 어려워야 된다.

하이테크가 섞인 이름을 제품명에 쓰면 더욱 좋다.

또 여러가지 설비를 하나의 세트로 묶는것은 기본이다.

중국당국은 중국내에 없는 상품에 대해선 관세를 거의 물리지 않기때문"
이라는게 롯데 관계자의 귀띔이다.

< 북경=김영근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