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오디오 업체 H전자 상품개발팀에 소속돼 있는 K과장이 받는 월급
명세서엔 매월 1백48만7천원이 찍혀 나온다.

K과장의 월급은 평균적인 봉급 생활자들과 마찬가지로 기본급과 수당으로
구성된다.

먼저 기본급이 99만5천원에 직급수당 6만원과 선임연구원에 주는 직책수당
9만원이 따라 붙는다.

여기에 근속 5년차 이상에게만 지급되는 직무수당(4만원)과 1급 기사자격
면허수당(3만원)이 더해진다.

이밖에 시간외근로수당 공휴수당 주휴수당 등을 합해 27만2천원이 추가된다.

식대와 매월 8만원 정도의 교통비는 따로 받는다.

총액기준으로 6백%를 받는 정기상여금도 별도다.

지난해는 연말에 특별상여금 50%를 더 받았다.

이렇게 따지면 K과장의 연간 급여수입은 총 2천9백만원 정도다.

월할 평균수입으로 따져 평균 2백41만6천원이 되는 셈이다.

매달 25일 월급봉투에 찍혀 나오는 돈(1백48만원7천원)과 1백만원 가까이
차이가 난다.

반면 K과장의 월 지출은 2백만원선.

그래서 그는 본의 아니게 적자 봉급생활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출이 월 1백50만원을 넘어서면 카드로 미리 당겨 쓰고 보너스를 받아
충당하는게 습관처럼 돼 있지요"

매달 지출이 "공식적"인 월급을 초과하니 우선 쓰고 보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매월 20만원 남짓 받는 식대와 교통비 야근수당은 그저 용돈으로
사용된다.

회사동료들 간에도 교통비를 받는 날은 으레 옆으로 새는 걸로 돼 있다.

"가욋돈이 생겼으니 한잔 하고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비단 K과장 만이 아니다.

대부분 샐러맨들이 마찬가지다.

자신의 월급이 얼마인지, 또 어떻게 구성되는 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임금 맹"들이 대부분이다.

계획적인 가계를 꾸리기 위해선 자신이 받는 급여가 정확히 얼마인지를
파악하는게 우선이다.

그러나 한국의 샐러리맨들은 대체로 자신의 연봉규모만 희미하게 파악하고
있을 뿐이다.

월급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심지어는 경리부서나 인사부서등 임금을 산출하는 부서에서 근무하는
사람조차도 연봉을 내려면 한참 계산기를 두드려 봐야 한다.

한국기업의 임금구조가 수당과 부가급여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다
이의 산출 기준마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어떤 수당은 정액으로 지급되고,어떤 수당은 기본급의 몇 %식으로 계산된다.

하루치 연.월차 수당을 내려면 통상임금을 먼저 산출해야 하고 여기다가
또 "25분의 1"을 곱하는 복잡한 수식을 거쳐야 한다.

상여금도 이에 못지않게 복잡하다.

기본급 기준으로 8백%를 주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총액기준" 4백%,
"통상임금" 기준 6백%를 지급하는 회사도 있다.

어떤 상여금은 "성과급"이란 이름으로 해당연도에 한해 지급됐다가 그다음
해엔 고정상여금이 되기도 한다.

기준에 따라 지급되는 시기도 달라진다.

1.3.5.7월에 지급하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2.4.6.8월로 지급시기를 정한
회사도 있다.

또 어떤 회사는 연말에 3~4백%를 몰아서 주기도 한다.

더구나 각종 수당을 산출하는 기준임금조차 통상임금과 평균임금 두개로
이원화돼 있다.

통상임금이란 "근로자의 근로 또는 총근로에 대해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키로 한 시간급금액.일급금액, 또는 월급금액"(근로기준법 시행령
31조)을 말한다.

이는 근로자들의 시간외수당, 야간근로수당, 휴일근로때의 할증임금
등의 산출기준이 된다.

반면 근로기준법 제 19조는 평균임금을 "산정해야 할 사유가 발생한 3개월
동안 그 근로자에 대해 지급된 임금의 총액을 그 기간의 총일수에 나눈
금액"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는 연차수당이나 휴업수당 재해보상금 퇴직금 등의 산정기초로 사용된다.

기본급에 고정 수당을 합한 "본봉" 개념을 기준임금으로 쓰는 회사도 있다.

결국 샐러리맨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임금맹"이 되는 것이다.

복잡한 임금구조는 노사협상에서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경기도 안산공단에 위치한 H정밀의 경우 올해 노사협상에서 괜한 신경전을
벌였다.

"총액대비 8.9% 인상안"을 주장한 사측과, "기본급 대비 11.5% 인상안"을
주장한 노측의 의견이 맞지 않아 수차례 협상이 결렬된 것.

그러나 이같은 임금협상안은 총액으로 보면 고작 0.5%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사측은 수당 신설을 선호했기 때문이고, 노측은 기본급비중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긴 하지만 서로가 쓸데 없이 정력을 낭비한
것만은 분명하다.

양측간에 감정의 앙금만 남긴 현대판 "조삼모사"의 이면에 복잡한 임금
구조가 자리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 이의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