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정부가 "탈세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블라디미르 포타닌 경제담당 제1부총리와 알렉산더 리브시크 재무장관 등
옐친 집권2기의 신임경제각료들이 요즈음들어 최우선적으로 풀어야할 숙제는
세수증대이다.

대통령선거기간중 재정수지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 때문이다.

올상반기 세입이 당초 목표치보다 40%나 부족, 재정난이 이미 심각한
지경에 이른데다 옐친대통령의 각종 선거공약을 실현하려면 적어도 80억달러
이상의 추가예산이 소요될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조사단은 상반기의 러시아 재정적자규모가 125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재정위기를 조기에 수습하지 못할 경우 102억달러의
차관제공을 보류할 의사까지 내비치고 있다.

IMF는 차관제공조건의 하나로 "재정적자부문은 국내총생산(GDP)의 4%이내를
유지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7월말 현재 러시아의 재정적자는 GDP의 11%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때문에 IMF는 당초 7월부터 매월 3억3,000만달러씩 차관을 지급할
계획이었으나 러시아정부가 확실한 재정적자축소 방안을 내놓을 때까지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젖줄이나 다름없는 IMF 차관이 연기되자 러시아당국으로선 비상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옐친대통령이 내뱉은 각종 선심공약의 집행을 뒤로 미루는 한편
세수증대를 위해 갖가지 묘안을 짜내고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 선거운동기간중 크게 헝클어진 징세체계를 다시 잡는게
급선무다.

그래서 불성실납세자 명단을 작성해 세금납부를 독려하는 동시에 탈세
행위자에 대한 감시및 처벌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러시아당국은 공언했다.

그러나 현행 세율을 그대로 적용하면 살아남을 기업이 거의 없다는데
러시아당국의 고민이 있다.

러시아에서는 기업에 부과되는 세목만 150가지가 넘는다.

세법에 충실하려면 1년동안 거둬들인 순이익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실정이다.

때문에 세법이 사실상 탈세를 조장한다는 지적도 있다.

일선 세무공무원이 나서서 이중장부를 꾸미도록 종용할 정도다.

탈세를 묵인해주는 조건으로 공무원에 대한 뇌물제공이 성행하는 것도
당연하다.

크렘린궁도 이러한 현실을 감안, 체납세금을 제대로 징수하는 세무공무원들
에겐 해당세금의 절반을 인센티브로 제공하겠다는 대통령령까지 최근
마련했다.

또 현금이 모자라는 기업은 현물로 대신 세금을 낼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라도 세금을 좀더 짜내야 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하지만 기존 주력 징세대상인 기업과 월급생활자만을 중심으로 세금을
더 거둬 들인다는 것은 러시아당국으로선 큰 위험부담이 있다.

현재 이익을 내는 기업들은 대부분 고위공무원들과 밀접한 유착관계를
만들어 놓고 있다.

이들이 과도한 세금 때문에 문을 닫는다면 옐친정권은 가장 확실한
지지기반을 상실하는 것과 다름없다.

월급생활자의 경우 실질임금 감소로 불만이 팽배해 있어 세금부담을
늘리기 보다는 면세혜택을 확대해줘야 할 상황이다.

고민끝에 러시아당국이 최근 내놓은 묘안이 이른바 "보따리장수"에 대한
과세다.

러시아에는 여행객으로 가장해 아시아나 남부유럽으로부터 싼 물건을
들여와 블랙마켓을 통해 이를 판매하는 상인들이 부지기수다.

전문 보따리장수뿐만 아니라 의사 교사 법조인 등 전문직 종사자들까지
해외여행을 할때는 보따리장사로 한몫 챙긴다.

이같은 방식으로 이뤄지는 상거래가 연간 100억달러를 넘어선다는게
러시아당국의 추산이다.

이에 따라 9월부터는 총액 1,000만달러 중량 50kg 이상의 물품을 들여오는
해외여행객들에겐 초과금액의 30%, 또는 초과중량 1kg당 80센트씩의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같은 대책에도 적지 않은 부작용이 뒤따를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러시아여행업협회의 올가 엘코바 회장은 "보따리장수에 대한 징세는
극빈생활자의 증가와 실업률상승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7월말 현재 러시아의 실업률은 9.2%로 사상최악의 수준이고 최저생계비에
못미치는 수입으로 극빈생활을 하고 있는 인구는 전체인구의 21%인
3,900만명에 달한다.

결국 러시아당국은 한마리 토끼를 잡기위해 다른 토끼를 포기해야만 하는
입장에 놓여 있는 셈이다.

선거운동기간중 두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을 수 있다고 장담한 보리스
옐친대통령은 현재 심신이 피곤하다는 핑계로 장기휴양중이다.

< 박순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