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이상 상승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여름철 비수기에 들어섰고 이라크산 원유가 조만간 시장에
출하될 것이 확실해졌음에도 불구, 유가는 전혀 하락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제유가는 오히려 지난 8일 유엔이 이라크산원유의 수출지침안을 공식
승인한 후 더욱 가파른 상승세로 돌아섰다.

지난주 국제시장에서 서부텍사스중질유(WTI) 최근월물가격은 배럴당
22달러이상에 거래됐다.

국제유가의 척도인 브렌트유선물가격은 20달러를 훌쩍 넘었다.

특히 두바이유 선물가격은 19달러선을 돌파, 4년만에 최고시세에 거래됐다.

당초 유가하락을 점쳤던 석유관계자들은 최근 태도를 돌변, 강세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상황이 이처럼 급변한 이유에 대한 분석은 여러가지다.

전문가들은 정치 사회적 돌발사건이 겹쳐진데다 이라크산 원유수출이
너무 늦어진 것, 그리고 당초 약세전망 자체가 틀린 점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클린턴 미대통령은 지난 5일 이란과 리비아를 테러지원국으로 지목하고
이들 국가의 석유산업에 투자하는 외국기업에 대한 제재를 허용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로써 양국의 석유 및 가스산업에 4,000만달러이상을 투자하는 외국기업
들은 미국 금융기관의 대출금지나 정부의 수입제한 조치를 받게 됐다.

이란은 이에 반발, 제재입법의 탈법성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한편 아랍권에 대미석유판매를 동결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문제는 이란과 리비아 모두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주요산유국이며
회교권이란 공통성을 지닌 점이다.

이는 지난 73년 회교권 산유국들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에 금수조치를
단행함으로써 발생한 1차 석유파동의 악령을 석유거래자들에게 상기시킨다.

이와 함께 OPEC회원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알제리 등에서는 폭탄테러사건이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사우디내 미군기지에 대한 폭탄테러와 알제리내 군사정부와 반정부간의
세력다툼으로 빚어지는 테러등이 그것이다.

하루 산유량 800만배럴로 세계 최대인 사우디를 비롯 알제리(쿼터량
75만배럴) 이란(360만배럴) 리비아(139만배럴)등에 이같은 긴장국면이
새롭게 조성되면서 잠재적 공급중단 우려가 고조된 것이다.

이에 따라 각국 정유업체들은 비축수요를 늘려 유가강세를 선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또 이라크산 원유가 시장에 본격 나오는 시기상의 문제도
유가강세요인으로 거론한다.

앞으로 이라크원유는 시장에 나오기 위해 세부적인 몇가지 절차를 더 거친
후 빨라야 9월쯤 수출이 가능하다.

미국의 반대 등 갖가지 장애로 연초 6월 예상에서 석달이나 늦어진 것이다.

그런데 가을철은 으레 동절기에 대비,비축수요가 증가하는 시기.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와 관련, 이라크산 원유는 시장에 충격없이
흡수될 것이라고 최근 밝혔다.

예상되는 이라크산 수출물량은 하루 70만배럴로 세계소비의 약1%에
불과한데다 현재의 수요강세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업계의 관계자들도 이라크의 석유수출소식은 익히 알려져 이미 시황에
충분히 반영된 것으로 보고 더이상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한다.

더욱이 노르웨이의 국영 스타토일사가 9월중 북해유전 정기보수에 들어갈
계획을 밝히고 있어 이같은 "시장흡수론"에 무게를 실어 준다.

결국 이라크산 원유수출이 본격화되면 유가가 일시적으로 떨어진다 해도
곧 반등세로 돌아설 것이란 얘기다.

세번째 유가강세 요인은 주요 석유기구들이 당초 발표한 올해 석유수급
전망과 이에 따른 유가예상이 틀렸다는 것.

산업계및 소비자의 실수요증가세는 더 높은데 반해 일부산유국에 대한
증산 예상은 오히려 기대치에 못 미친 것이다.

IEA는 지난 7월중 세계산유량은 6월에 비해 하루 50만배럴 증가했지만
가격은 떨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수요가 당초 예상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IEA는 올해 전세계석유수요를 과거 발표치보다 하루 10만배럴
높게 상향 조정, 7, 180만배럴로 최근 추정했다.

주요 석유관련 전문기관들도 최근의 시황변인과 상관없는 실수요가 높기
때문에 유가가 강세기조를 시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전문기관들은 금년도 브렌트유평균가격을 지난해말 발표당시
17달러로 예상했으나 최근 18~19달러선으로 상향 조정했다.

생산전망도 빗나갔다.

각 기관들은 당초 비OPEC산유국이 지난해보다 1일 130만배럴정도 증산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 증산량은 그 절반수준에 그쳤다.

석유시장을 둘러싼 이런 복합적인 요인들로 유가강세기조는 지속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유가하락을 기대했던 수입국들의 경제에 주름살을 하나 더 얹을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