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정 < 미 일리노이주립대 교수 >

최근 정부는 경부고속철도 등 5대 국책사업에 2000년까지 20조원을
투자하고 또한 2011년까지는 10조원을 더 들여서 이들 사업과 관련된
부대 도로및 철도를 건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와 별도로 전국의 도로건설및 확장을 위해 2002년까지
15조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렇게 엄청난 액수의 자금을 이른바 사회간접자본(SOC: Social
Overhead Capital)조성에 투여하겠다는 정부의 정책발표는 일단 반가운
소식이라고 하겠다.

그것은 경제의 인프라스트럭처,즉 하부구조가 되는 우리의 사회간접자본이
너무나 미약하고 낙후되어 있어 이제 이 분야에 대한 투자를 더이상 늦출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경제의 외형은 고속팽창을 거듭해 왔지만 이를 밑에서
받쳐주어야 할 하부구조는 거북이걸음도 하지 못했고 그결과 누적된
폐해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취약한 SOC때문에 우리경제가 치르는 엄청난 물류비용은 결국 다른
변수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쳐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높은 물류비용은 고금리-고임금-고지가-고규제 등과 아울러 이른바
"5고"라는 병폐로 지적되고 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을 둘러싸고도 그랬듯이 모든 일에서 체면과
겉치레와 전시효과를 앞세우는 우리는 경제에서도 겉모양만 중시해온
바람에 외화내빈의 꼴이 된것 같다.

그러나 밖으로 나타나는 겉이나 윗부분은 아무리 좋아도 속이나
아랫부분이 형편없다면 문제가 아닐수 없다.

특히 아랫도리가 허약한 경제는 언젠가는 성수대교나 삼풍처럼 와르르
무너질수도 있다.

그래서 요즘 인프라나 SOC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첨단의 하이테크 시설과 기술, 그리고 숙련되고 값싼 노동력을
확보함으로써 좋은 물건을 많이 만들어낼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를 제대로
내다팔수 있는가는 또다른 문제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내도 이를 실어 나르고 부리는 도로 철도
항만시설 등이 불충분하면 높은 매출과 이익을 올릴수 없기때문이다.

물동량은 계속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현재와 같은 일분
일초를 다투는 무한경쟁속에서는 물류(logistics)에 관련된 비용과
효율성이 경쟁력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을 알수 잇다.

고비용-저효율이라는 우리경제 최대의 문제점이 태부족인 SOC와
인프라에 기인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SOC라고 하면 정책당국자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도로
철도 교량 항만 공항 등 물류시설만을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같이 물류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운송, 하역시설이 SOC의 주축을
이루는 것은 물론이지만 SOC는 이밖에도 상하수도시설을 비롯해서 전기
및 개스공급시설, 정보통신시설, 공해처리시설, 기술개발및 연구시설등
많은 부대시설들을 포함한다.

SOC는 결국 어떤 특정 기업의 고유한 필요성에 따라 투자되고 축적되는
자본시설이 아니라 산업과 경제 전반이 공통적으로 필요로 하는 자본시설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SOC를 정비하고 확충할때에 어떤 특정 기업이나 업종만 득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국가경제 전체가 혜택을 받게된다.

SOC의 첫 글자가 사회(social)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산업용수및 에너지 공해처리 정보통신 연구개발 등의 측면에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문제가 되어 왔다는 것이 결국 미흡한 SOC에도
크게 기인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사실 그동안 정부의 정책부재와 기업들의 몰인식으로 인해 이 부면에
관한 우리의 SOC가 얼마나 부족하고 낙후되어 있는가를 살펴보면 한탄이
나올 지경이다.

도심에 치솟는 멋진 고층건물들은 겉보기에 좋아 우리의 외양위주
정서에 맞을지는 모르지만 그 땅밑에 깔려서 보이지 않는 인프라, 즉
상하수도관 전기선 전화선 개스관 각종 케이블 등의 열악한 상태는
정말 한탄스럽다.

심심찮게 터지는 개스사고는 그렇다 치고, 아직도 일제때 쓰던 상수도관을
그대로 쓰고 있는 곳도 많이 있고 하수도시설이 태부족이라 엄청난 양의
생활하수와 산업폐수가 그대로 방류되고 있다니 한탄이 절로 나온다.

방류되는 오폐수로 언제 떼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한탄강의 물고기들도
한탄하고 있겠지만 잡혀 갈 것을 뻔히 알면서도 폐수를 방류할 수밖에
없는 기업인들도 한탄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도로를 번듯하게 닦아 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것은 교통대란을 매일 겪고 있는 시민들에게 직접 살에 닿는 얘기이기도
하고 또 그런 교통체증때문에 우리 경제가 치르고 있는 비용이 몇십억이나
된다는 통계수치를 들먹일때 더욱 수긍이 가는 얘기다.

그러나 땅속에 묻는 상하수도관이나 공업단지내에 설치하는 공해처리시설,
또 연구소에 들여놓는 기자재들같이 보통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SOC를 확충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기는 우리 정부도 이런 일에 신경을 전혀 안 쓰는 것은 아니다.

95년중 공해방지및 처리비용으로 근6조원을 지출했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는데 이는 94년보다 17%이상 증가한것이고 우리 GDP의 1.69%에 달하는
수치라고 한다.

정부는 또 미국이 GDP의 1.71%를 이 부분에 지출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우리 상황이 미국과 대등하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야 겨우 손을 쓰기시작한 우리네와 벌써 몇십년 전부터
이 방면에 투자를해온 선진국의 경우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정부도
알고 있을것이다.

보이는 데만 신경쓰고 잘 안보이는곳은 등한시하는 정부의 "눈가리고
아웅"정책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SOC는 낙후성을 면치 못할것이다.

대기업들이 식혜나 만들어 팔고 소비성 위락업종에만 몰두하고 있는 한
우리의 고비용-저효율 구조는 개선되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는 눈에 보이지않는 SOC에 더욱 과감히 투자하고 이 부분에
민자를 더욱 과감히 유치하라고 권면하고 싶다.

그러나 SOC의 영역은 더욱 확대될수 있다.

우리의 사회-정치-경제시스템(socio-politico-economic system)이라는
조직을 놓고볼때 그 바탕이 되는 틀을 SOC 또는 인프라라고 한다면
그 영역은 위에서 말한것들 이외에도 각종의 사회복지시설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장된다.

광의의 SOC에는 공원및 녹지대, 장애자보호시설, 병원, 각급학교 및
도서관, 노유자보호시설 등등도 포함된다는 얘기다.

이쯤되면 우리가 얼마나 넓고 많은 SOC분야에서 뒤쳐져 있는가를 쉽게
알수 있다.

장애자나 노유자를 위한 사회자본이 얼마나 잘 확충, 정비되어 있는가는
눈에 잘 띠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장애자나 노유자가 되었을 때나 알수있다.

남해바다에 적조가 생기고 낙동강에 녹조현상이 생기는것은 신문이나
TV에서 보고 알뿐이지 역시 남의 일이기에 눈에 잘 안 띠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산성비에 산성눈, 산성안개까지 덮치고 오존경보가 무시로
울리는 현실도 눈에 잘 안보인다고 해서 그대로 방치할 것인가.

SOC와 인프라는 우리기업들의 경쟁력을 일구고 경제를 견실하게 하는데
필수적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생존을 도모하고 생활 의 질을 높이는데
있어서도 0순위의 급선무가 아닐수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언제까지나 얼굴화장만 하고 있을건가.

Beauty is but slkin deep (미모도 가죽한 꺼풀뿐)이라는데.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