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화는 사대부 양반계급들이 그린 그림을 말한다.

이들 사대부는 직업화가들처럼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기로 그림을
그렸다.

직업 화가들이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대로 그리지 못하고
대부분 주문자의 요구에 맞추어야 했다면 문인화가들은 그런 현실적
제약으로부터 여러모로 자유스러웠던, 아주 행복한 화가들이었다.

문인화가들은 대상의 외형을 충실히 묘사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자유분방한 필치로 마음껏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 화가를 아마추어라고 부르는 이유는 생계 부담으로부터
벗어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지 결코 그림의 수준이 낮았기 때문은
아니다.

이 당시의 대표적인 문인화들은 예술적으로 직업 화가들이 그린
그림에 비해 뒤지지 않는 훌륭한 작품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유리한 작업조건 때문에 오히려 전문
화가들을 압도할만한 그림을 그려내는 경우도 많았다.

중국 명나라 때에는 직업 화가들의 꼼꼼한 필치와 짙은 색채를
특징으로 하는 그림을 북종화로, 그와 대조적인 문인화의 화풍을 따르는
그림을 남종화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나중에는 북종화를 업신여기고 남종화를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생겨났고, 그 결과 직업 화가들이 남종화의 필치를 모방함으로써
북종화와 남종화의 양식적 차이는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문인화에는 대개 시나 글씨가 같이 붙어 "시서화 삼절"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이는 문인화가들의 인문학적 교양을 반영하는 것이다.

특히 매난국죽 사군자는 사대부의 인격을 비유하는 소재로서 서예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인품을 반영한다고 보아 문인화가들이 즐겨 그림으로
그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는 조선 후기의 강세황 이인상, 그리고
말기의 김정희 일파를 들 수 있다.

물론 오늘날에도 여기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있지만 조선사대부와
같은 교양을 갖춘 "엘리트 문인화가"들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문인화가가 되기 위해선 일정한 지식과 기술을 쌓기 위한 숙련기간이
필요한데 이것은 직업의 전문화가 이미 정착된 현대사회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 가나미술문화연구소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