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 3년이 우리 사회에 가져다준 변화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금융기관에서 계좌를 새로 개설할때나 송금할때 자연스럽게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게 되는 등 일상의 작은 변화에서부터 전두환 노태우 두명의 전직
대통령들을 사법처리하는 등 정치사의 커다란 변혁을 가져오기까지 했다.

분야별로 점검해 볼 경우 우선 정치권은 다소 맑아진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지자체선거나 총선에서 금권시비가 눈에 띄게 적었던 것도
금융실명제로 정치자금집행과정의 투명성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해석될
정도다.

실제 국회의원들은 "국회의원 노릇을 하기가 점점 힘들어져 간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자기돈 아니면 후원회자금만을 갖고 써야 하는 시대가 개막되면서
"적게 받고, 적게 쓰는 정치"가 대세를 이루는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일부정치인은 비밀보장과 위험감소를 위해 자금수수대상을 종전보다
축소하면서 뇌물의 건당액수를 늘려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경우도 동거녀의 이름으로 재산을 은닉하려다 꼬리를 잡혀
구속된 전청와대 제1부속실장 장학로씨처럼 앞으로도 실명제의 망을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실명제가 경제에 준 영향은 아직 정확히 평가하기 어렵다는게 일반적인
견해다.

실명제로 인해 지하자금의 금융기관유입이 활발해진 덕으로 대기업들은
자금사정이 크게 좋아졌지만 중소기업들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종전보다 자금조달이 어려워졌다고 호소할 정도다.

이 때문에 실명제실시를 경기양극화의 출발점으로 보려는 사람들도
많은 편이다.

실명제의 주역인 홍재형 전 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이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기를 악화시킨 주역"이라는 상대후보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떨어졌다는 점도 이같은 "정서"를 나타내준다.

실명제로 인한 "행태" 변화중에 가장 부정적인 것은 과소비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일부 거액 자산가들이 실명제로 제도권에 소화하기 힘든 검은 돈들을
"일단 쓰고 보자"는 심리에서 출발한 과소비풍조가 최근들어 중산층까지
확산되면서 고가외제품의 수입이 급증, 경상수지적자의 주범이 되고
있을 정도다.

물론 아직 사각지대도 많은 편이다.

최근 증권가에 있었던 "사건"은 사각지대가 여전함을 보여준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5월 모 상장기업의 퇴직간부가 전직장의 대주주측에
차명대가로 10억원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

물론 상장에 필요한 주식분산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친인척 친구 등의
이름으로 자신의 주식을 명의개서한 뒤 기업공개로 큰 돈을 벌어들인
대주주측은 증감원에 이 사실이 신고되는 등 사건이 확대될 기미가 보이자
최근 5억원이상의 거액을 차명료로 지불하는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최승욱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