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나이를 먹지 않을것 같던 우리들의 인생도 이제는 모두가
반백의 중늙은이들이 되어 있다.

이제는 어떠한 일을 추진하기 전에 한번쯤은 먼저 뒤를 돌아보아
결정을 하여야 하는 습관이 생겼다.

징검다리도 두들겨 보아야 안심을 하는 버릇이 나도 모르게 몸에
습관적으로 배이게 된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정확히 35년이 되었고, 매년 우리 곁을
불시에 떠나는 친구들이 점점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

바로 이 죽음을 준비하여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

경기고등학교 57회 동기생을 주축으로 한 우리들의 모임인
"57 ELIM"회는 1987년 6월15일 첫모임을 강남에 있는 제일생명건물
뒷편에 있는 먹자골목에 위치한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동창인
최창무 목사를 중심으로 시작한 기독신우회 모임이다.

처음에는 골초들도 많이 참여하여 1시간여의 모임을 지행(?)하지
못하였거나 모임이 끝나자 마자 한잔씩을 나누어야 하는 가장
인간적인(?)모습도 보였으나 이제는 모두가 진지한 모습들이다.

특히 창립기념일엔 매년 부부동반하에 각 가정에서 음식을
한가지씩 마련하여 함께 예배를 드린후에 만찬을 즐기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때로는 병중에 있는 친구들을 방문하여 기도하며 함께 위로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부부합창단을 조직하여 현 국회의원인 박정훈군의 사모님의
간드러진(?) 지휘솜씨에 심취(?)되어 모두들 열심히 연습을 하여
동창회에 특별출연한 일이 우리들에게 크나큰 즐거움을 주었던
추억이다.

지난번에는 점심시간에 동창들의 직장들을 방문하여 오찬을 함께
나누며 예배를 드리기도 하였고, 이러한 방법으로 동창들과의 만남을
계속하자는데 동의 하였다.

무엇보다 당시 차관보의 공직을 맡고 있었던 동창인 이송용군의
죽음을 잊어버릴 수가 없다.

각종 암으로 3개월여의 시한부 인생이었고, 불교신자였던 그가
우리 모임에 동참하기를 원하였고 그에게 복음을 제시하여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결국은 서울대병원에서 최창무목사 김영일군 그리고
필자가 함께 기도하는 중에 너무나 편안한 모습으로 우리를 만난지
6개월후에 우리 곁을 떠나는 그의 임종을 지켜 보게 된 경우가 되겠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너무나 바쁜 생활을 하다보니 죽음과 함께
살고 있음에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고 있으며 우리의 죽음은
그것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부분 모르고 있음이다.

진실로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거를 돌아보며 그것을 반추하는
그러한 모습이 아니라 오늘을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며 우리 모두들
에게 진정한 영원한 삶이 있음을 깨닫는 것이리라

이것을 우리의 삶에 목표를 두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동창이 많이
있도록 우리의 모임인 "57ELIM회"는 쉬지 않고 동창친구들을
만나야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