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EDS시스템의 김범수사장(57)은 회사안팎에서 "컴퓨터 1세대"로 통한다.

컴퓨터가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된 지난 60년대 후반 컴퓨터와 인연을 맺고
줄곧 컴퓨터를 다루는 길을 걸어 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스템통합(SI)업체의 수장으로 타업체의 정보화를 도와주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그가 컴퓨터와 처음 만난때는 지난 67년 유한양행 기획실 근무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측이 컴퓨터를 도입키로 결정, 운영인력을 뽑기 위해 시행한 적성검사
에서 김사장이 우수한 성적을 얻었던 것.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그로서는 많은 고민을 했다.

컴맹이기도 했지만 안정된 미래가 보장될 수 있는 것으로 얘기되던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따기 위한 시험이 한달여 남은 때였다.

그러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은 컴퓨터를 선택하도록 했다.

유한양행의 컴퓨터 도입이 당시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이 될 만큼 주위에는
컴퓨터전문가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당시 설립된 한국IBM의 엔지니어들과 함께 컴퓨터를 배웠다.

그러나 1년만에 운영에 들어간 컴퓨터시스템에 비판이 쏟아졌다.

효과에 비해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었다.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결국 회사측은 컴퓨터운영을 중지하고 인력을 원래부서로 복귀시켰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던 김사장은 다음해에 간부사원을 모집한 호남정유
(현 LG정유)로 회사를 옮겼다.

예산과장을 맡은 그는 컴퓨터와는 인연을 뗀 듯 싶었다.

그러나 회사가 입주해 있던 구대연각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그는
컴퓨터와의 두번째 인연을 맺는다.

사내문서가 모두 타버려 매상수금등 앞날이 깜깜했던 때에 미합작사인
칼덱스사는 "컴퓨터를 사용했다면 따로 자료를 보관할수 있어 큰 문제는
막을 수 있었던 인재"라고 조언했다.

곧바로 컴퓨터 도입이 추진됐고 인력선발을 위한 적성검사가 치러졌다.

여기에서도 김사장은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이후 경리부장등으로 잠시 외도를 하긴 했지만 줄곧 전산책임자의 길을
걸었다.

"전산은 창조적인 업무이기 때문에 고통도 있지만 기쁨도 크다"는 그는
"전산을 한직으로 여기던 때도 있었으나 전산담당 임원이 생기는등 각광받는
시대가 됐으며 갈수록 컴퓨터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자우편.결재로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한다는 김사장은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외국 정보기술 업체들의 동향정보를 얻고 있다"며 "수작업을 자동화
하는 차원이 아닌 경쟁력 제고수단으로 컴퓨터를 사용해야 할 때"라고 강조
했다.

< 오광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