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경제상황을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내년경제는 올해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왔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과소비는 도마 위에 올라 경제난의 근본
원인인 것처럼 고발된다.

국제수지 적자폭이 커지면 해외여행 역시 여론의 화살을 받는다.

해외여행자는 국제수지 악화의 주범이 된다.

태국에서 곰요리를 먹으려는 한국인들이 그곳 경찰에 붙잡혀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일부 부유층의 보신관광과 무절제한 해외쇼핑 등 사치성 해외여행에
대해 검찰이 수사한다는 방침도 밝혀졌다.

95년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에 이르렀다.

2020년에는 한국의 경제규모가 세계 7위로 올라선다는 장미빛
청사진이 제시된 바 있다.

경제가 한두해 나빠진다고 해서 우리가 선진국 또는 7대강국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경기는 호황 불황을 반복하는 것이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경제는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경제가 나빠지는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가 나빠지고 있는 이유를 자세히 살필 필요가 있다.

감기 몸살이 아니라 체력이 구조적으로 약해지고 있다면 근본대책이
있어야 한다.

경제난이 "일부 부유층"의 과소비와 외화낭비 때문인가.

일부 부유층에 누가 포함되며, 과소비는 무얼 말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은데도 일부 부유층의 과소비를 고발하고 있다.

과소비와 외화낭비는 옹호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일부계층의 행태로만 매도할 일도 아니다.

개인의 소비행태만을 비난하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간 7~8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음식물 낭비는 누구 탓이며 또 물
가스 전기 기름 낭비는 누구 탓인가.

비합리적 비효율적 자원낭비의 주범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경제난의 근본원인은 고비용 저효율 체질이 구조적으로 굳어지고
있다는데 있다.

이점을 간과하고 과소비와 해외여행에 화살을 돌리면 정책의 몫과
윤리 도덕의 몫이 혼동된다.

우리의 제조업 임금은 90년 이후 연평균 15%이상 상승했다.

미국은 3.3%, 일본은 2.4%, 대만은 9.6% 상승에 불과했다.

임금은 계속 올라 기업경영에 있어서 인건비 중압이 커졌다.

임금이 올랐다고 해서 근로자가 만족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기업의 경영실적이 좋으면 기업성장을 위한 재투자보다 임금
인상으로 보상받아야 하고, 경영실적이 나빠도 임금은 올라야
한다고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대기업은 분규나 파업 없이 임금협상이 타결되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대기업은 임금 상승분을 하청 중소기업의 납품단가 깎기 등으로
보상받을 길이 있다.

하청 중소기업은 버틸 길이 없어 문을 닫거나 빈사상태에 놓인다.

대기업의 무리한 임금 상승분을 중소기업이 부담하고 있고 그것이
중소기업 도산의 원인이 되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선진국을 따라잡거나 후발 개도국의 추격을 따돌릴 힘이 없으면
국제경쟁에서 이길 방법은 없다.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통한 품질개선과 원가절감 효과보다
임금 상승, 높은 땅값과 물류비용 등 비용 상승으로 한국경제는
무너지고 있다.

우리는 마치 고스톱판에서 패가 나쁜데도, 또 옆사람이 이쪽 패를
다 읽고 있어 이길 방법이 없는데도 돈을 따겠다고 요행을 바라고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닌가.

해외여행에서 씀씀이가 헤픈 것은 문제지만 소득은 늘어나고 세계화
바람은 부는데 여행수요가 느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내관광지에 바가지 상혼이 스며있다면, 동남아 여행경비보다
국내관광경비가 더 많이 든다면 관광객이 더 많이 외국으로 나갈
것이고 외국관광객의 발길은 뜸해질 것은 분명하다.

경쟁력을 잃은 기업은 설 땅을 잃고 있는데 임금결정 노사협상은
경제논리가 아닌 세력논리에 지배되고 있다.

정치권은 인기성 발언으로 본질을 호도하거나 문제 자체를 다루기를
꺼린다.

또 근로자 권익 신장의 바탕이 되는 기업은 죽이고 근로자는
살리겠다는 모순된 이야기를 서슴지 않는다.

근로자를 위한 최선의 길은 그들이 경쟁력을 높이는 일에 매달리게
하는 것이다.

기업이 살고 근로자가 살고 국민경제가 사는 길은 그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당국도 정치권도 이걸 모를 리 없다.

그러나 나서길 주저한다.

기업 역시 근로자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행동을 한다.

경제난의 원인을 그 대상이 애매한 "일부 부유층"의 과소비에 돌리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나 다름없다.

과소비만 탓할 것이 아니라 저축할 유인을 제공하는 일에 눈을
돌려야 한다.

한국경제의 근본문제는 고비용 저효율 체질에 있다.

이 체질을 바꾸기 위해 정부 기업 근로자와 국민 일반이 해야할
일이 있다.

막연히 윤리 도덕적 차원의 과소비와 해외여행 고발만으로
경제문제를 풀려고 해서는 안된다.

터무니 없이 비싼 물건값 서비스요금을 낮추는 길을 찾아야 우리
모두가 산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