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우리나라를 지난89년 통신분야의 우선협상대상국(PFC)으로 지정
한데 이어 또다시 PFC지정을 한것은 급팽창하는 한국의 통신시장을 놓칠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와함께 자국내 대선을 의식한 정치적 고려가 뒤얽혀 "강공 무리수"를
둔 것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미국이 무리수를 두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확대일로를 보이고 있는
한국의 통신시장이 노른자위라는 판단에 따른 것같다.

정부의 통신시장 경쟁도입방침에 따라 지난 6월 선정된 7개분야 27개 신규
통신사업자들은 서비스를 위해 최소한 65억달러(약 5조원)어치의 통신장비를
구매해야 한다.

또 2000년까지는 장비와 서비스를 포함한 우리나라 통신시장의 규모가
1천억달러(약 80조원)에 이르는등 급팽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통신종주국을 자처하는 미국으로서는 한국이라는 황금시장을 놓칠수
없다는 강박감이 작용할수 밖에 없어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이동통신등이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이동전화
서비스에 필요한 장비를 국내제조업체와 공동으로 개발, 국산화함에 따라
한국에 대한 통신장비 수출에 어느정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풀이
된다.

그동안 한국에서 사용된 아날로그이동전화 장비가 모두 미국산이었던데
반해 미국산 CDMA장비가 진출할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다는 점이 이같은
위기감을 증폭시켰다는 얘기다.

미국은 한미양국간 통신협상을 통해 한국정부에 <>민간기업 장비구매
자율화 <>정보기기의 관세철폐 <>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지분제한 철폐
<>통신망 동등접속등 공정경쟁제도 수립등을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

이같은 요구는 한국정부가 민간기업의 장비구매와 관련, 국산을 구입하도록
압력을 넣는등 외국업체의 한국내 통신시장접근을 방해하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데서 비롯됐다.

USTR는 금번 PFC지정과 함께 양국간 통신협상에서 진전이 없을 경우 통신은
물론 반도체와 자동차분야에도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흘렸다.

미국의 이같은 으름장은 오는 11월에 있을 대선을 다분히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PFC지정과 관련, 당분간 미국의 움직임을 주시한후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미국측이 그동안 협상과정에서 여러가지 요구를 하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수있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던 점을 고려할때 이번 조치는 다분히
정치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나름대로의 판단에서다.

실제로 모토로라등 미국장비업체들은 USTR의 이번 조치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토로라의 경우 무선데이터통신사업자로 선정된 한컴텔레콤등 3개업체의
기술제휴선으로, 지오텍은 전국TRS(주파수공용통신)사업자인 아남텔레콤의
지분 21%를 확보하는등 한국내 통신서비스업진출에 성공했다.

정부는 앞으로 벌어질 미국과의 협상에서 민간기업의 장비구매에 대해서는
관여할 수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키로 했다.

서비스업체에 대한 외국인지분제한 철폐등은 WTO의 통신분야 다자간협상
에서 논의할 문제이지 장비문제만을 다룰 수 있는 양국간 협상의 논의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방침이다.

또 지난 95년 대미통신장비 수출은 6억3백만달러인데 비해 미국산장비수입
은 8억2천6백만달러에 이르러 총 2억2천3백만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한 점을
지적, 한국을 우선협상대상국으로 지정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는 점을
강조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만약 무역보복에 들어갈 경우 미국을
WTO에 제소하는등 "필요한" 모든 대응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정부의 이같은 강경입장과 미국의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 맞물려 당분간
한미간 힘겨루기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 김도경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