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통신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미국측 압력이 중요한 고비를 맞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현지 시간으로 지난 26일 종합무역및 경쟁법
1374조에 따라 한국을 우선협상대상국(PFC)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20일 안에 통신협상을 다시 시작해야 하며 원만한
타결을 보지 못하면 협상시한인 1년안에 보복조치를 당할수 있다.

미국측은 굳이 1년을 기다릴 것 없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보복조치를
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금도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통신협상이 진행중인 데다가 민간통신
업체에 대한 통신장비판매를 정부가 보장하라는 등 무리한 요구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점에서 미국측이 강수를 두는 까닭은 정치
경제적인 배경 때문이다.

미국은 우선 최근에 신규 통신사업자가 지정되는 등 앞으로 5년안에
1,000억달러 규모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 통신시장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장악하겠다는 속셈이다.

일단 통신장비 시장을 장악하면 통신 서비스시장은 쉽게 공략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자면 통신장비의 시장형성 초기에 시장을 선점해야 하며 이 때문에
개인휴대통신(PCS)을 포함한 무선이동통신장비의 시장개방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오는 11월의 미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통상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둬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유럽 일본 중국 등과 이미 통신시장 개방협상을 벌였으나 뚜렷한
성과를 보지 못하자 압력에 약한 한국을 본보기로 삼으려는 생각인 것같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응 방향은 분명하다.

WTO협상을 통한 다자간협상의 틀속에서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면서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기술자립을 서두르는 단호하고 획기적인 노력을 펼쳐야 한다고
본다.

이제 막 이동통신분야에서 CDMA방식의 상용화에 성공해 해외시장진출을
꾀하는 마당에 안방을 내놓으라는 미국의 요구는 강자의 억지이면서 심각한
위협이다.

특히 미국산 통신장비를 구입할 때 기술이전조건을 붙이지 않으며 장비
형식승인때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요구하지 말라는 것은 자국이기주의
차원을 넘어 내정간섭이란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것은 지난 몇년동안 엄청난 국제수지적자를 감수하며 키워온 국내
통신산업을 싹부터 자르겠다는 속셈이다.

더욱 큰 문제는 미국의 통신시장 개방압력이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장차 방송과 통신의 상호진출허용및 합병으로 엄청난 규모와 경쟁력을
갖춘 거대 기업들이 무차별적으로 밀려들어 올 것이 예상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는 어렵게 쏘아올린 무궁화위성을 몇달씩 놀리는 등
허술한 구석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불합리한 개방압력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정보통신 전반을 포괄하는
분명하고 확고한 방침이 하루 빨리 정립돼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