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반의 손이 유상련의 허벅지 안쪽으로 더욱 들어오더니 거의 국부에
닿으려고 하였다.

유상련은 워낙 준수하게 생긴 탓으로 어디를 가든지 남색가들이 노리는
대상이 되어 곤욕을 치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므로 지금 설반의 수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바 아니었다.

하긴 유상련도 경우에 따라서는 남색가들의 애무를 은근히 즐긴 적도
있었다.

더 나아가 자신이 남자 역할을 하며 상대방을 적극적으로 안기도
하였다.

하지만 주색잡기를 할 때도 아무 여자한테나 욕정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듯이 남색의 경우에도 상대에 따라 마음이 동하기도 하고 거부반응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유상련이 볼 때 설반은 그야말로 밥맛이었다.

이런 치들이 노는 것을 보면 남색행위 자체가 구역질 나기도 하였다.

그 옆에 앉아 있기도 싫어 아예 술자리를 뜨고도 싶었지만 자신을
초대해준 뇌상영의 체면을 생각해서 좀더 참아보기로 하였다.

유상련은 기지를 발휘하여 설반에게 술을 권하는 척하며 설반의 손을
슬쩍 물리치고, "허허허허" 한번 호탕하게 웃어 좌중의 시선을 끌어
들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유상련에게로 향해 있자 설반도 함부로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어색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유상련이 술잔을 손에 든 채로 일어서더니 노래를 부를 채비를 하였다.

"명나라 때 탕현조가 지은 "목란정" 아시죠?

그 목란정 이야기 한 대목을 노래로 부르겠으니 들어보시오"

유상련이 가희보다도 더 고운 목소리로 어깨춤을 추어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남안 태수 두보의 딸 두여랑이 시녀 춘향을 데리고 목란정을 유람할세
아, 꿈속에서 님을 만났어라 유몽매, 버들이 매화 꿈을 꾸었느냐 매화가
버들 꿈을 꾸었느냐 사람들은 유상련의 노래소리에 모두 넋이 나가 그의
몸짓 눈짓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그를 주목하였다.

특히 맞은 편에 앉은 가진이 유상련에게 완전히 반한 표정으로 목이
타는지 연방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이고 있었다.

그러더니 유상련을 따라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자리를 옮겨
유상련 옆으로 끼여들었다.

설반은 가진이 왜 자리를 옮기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으므로 이맛살을
찌푸렸다.

자기가 하는 짓은 추해 보이지 않고 남이 자기 짓을 따라 하면 추해
보이는 것이 호색가들의 비뚤어진 심보인 모양이었다.

유상련이 노래를 한차례 마치고 앉자 설반과 가진이 유상련의 양 옆에
붙어서 추근거리기 시작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