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는 회사경영의 핵심브레인"

일본 조선업계에서 랭킹 2,3위를 다투는 IHI는 독특한 경영참가제도를
지니고 있다.

노조가 매년 경영개선에 대한 조합원의 의견을 수렴, 회사측에 건의하는
제도가 그것.

이 작업은 매년 가을께 이뤄지는데 회사측에 올려진 건의안은 경영진의
세부검토를 통해 다음해 1월 발표된다.

올해도 지난 1월25일 타케이 토시후미사장이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직접
경영협의회 전체회의를 열고 "헤이세이 8년 신경영방침"을 설명했다.

이 자리에는 타케이사장을 비롯, 이토부사장 야하시전무 등 모든
경영진들이 참석했다.

타게이사장은 설명을 통해 수주의 확대를 올해 최우선과제로 꼽았고
이어 회사경쟁력강화와 보다 긴박한 선박해양대책을 당부했다.

그러나 이같은 내용이 노조에 의해 건의됐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노조측의 경영개선안에는 임금인상안이나 근로조건의 개선에 대한
어떠한 요구도 들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대해 이회사 노조의 다나카 토시오 서기장은 "임금이나 근로조건의
개선은 별도의 교섭절차가 있는 만큼 회사측과 책임있는 동반자로서
순수하게 경영개선방안만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는 또 지난 95년의 매출과 경상이익을 비롯해 회사의
전반적인 경영실적, 일본경제의 거시적인 동향 등이 브리핑됐다.

등락이 심했던 엔고와 엔저의 여파, 해외조선업계의 동향, 근로자
안전과 건강에 대한 회사측의 배려 등도 설명됐다.

이어 타케이사장이 인사말을 통해 "신경영계획의 내용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는 만큼 이 자리에서 격의없는 토론을 나눠달라"고 주문하자
노사간에 4시간이 넘는 의견교환이 이뤄지기도 했다.

회사측이 노조의 경영개선안에 대해 이처럼 "성의"를 보이는 이유는
또 있다.

노조의 경영개선안이 단기간에 급조된 것이 아니라 노조전임자 40여명이
석달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다듬었기 때문이다.

회사측이 노조에 대해 "귀중한 건의에 감사한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결코 "빈말"이 아닌 셈이다.

1백42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IHI중공업의 성장에는 이같은 노사협력마인드가
바탕이 됐음은 물론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8천여억엔의 매출과 상당액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올해 임금인상분은 월평균 2천4백엔에 불과(?)했다.

미쓰비시 중공업에 이어 매년 업계랭킹 2위를 유지해오다가 지난해
엔고의 여파로 인해 3위로 내려앉자 노조측이 과도한 임금인상요구를
자제했던 탓이다.

IHI는 매년 노조측이 경영개선안을 제시하는 경영협의회 외에도
수많은 노사협의 채널을 갖고 있다.

노사간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수시로 열리는 노동협의회, 1년에
네차례씩 정기적으로 열리는 특별안전대책위원회 등이 있으며 노사양측간
실무자접촉의 채널도 한달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또 각 지부별로 한달에 한번이상 노동협의회가 열리고 있으며 생산협의회와
공정안정위생위원회도 각 공정별로 정기회합을 갖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협의를 통해 노사간 신뢰를 유지할 수 있고 회사에
"주인의식"을 배양해 나가고 있다.

이 회사는 또 현장근로자에 대해 철저한 교육훈련시스템을 갖고 있는 것이
강점이다.

사시가 "기술로써 사회에 공헌한다"인데다 지난 1백40여년간 지속적인
기술혁신으로 회사를 발전시켜왔기 때문에 인적자본 및 기술에 대한
투자가 어느회사보다 폭넓고 많다.

직종에 따라 알맞는 적성훈련과 자격증취득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결과 웬만한 생산직 근로자들은 2-3개의 자격증을 지니고 있다.

또 현장근로자의 중간관리직으로의 승진이 가능하기 때문에 근로자들도
개인능력개발을 위한 게을리할 수 없는 분위기이다.

이마모토 호로시 노무관리부장은 "공장별로 직장모임이 있는데 직장회장이
대개 과장으로 승진한다"며 "상당한 수준의 기술과 자질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직장일을 소화해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노조도 자체 교육훈련시스템을 갖추고 정규활동과 함께
근로자들의 자질향상훈련을 병행하고 있다.

노조는 그러나 업무시간을 할애해 교육을 실시하지는 않는다.

생산성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다는 판단때문이다.

그러나 IHI노조가 회사측에 무조건 협력적이지만은 않다.

"생산에는 협력적이지만 이익의 분배는 대립적"이라는 것이 지난
63년 설립된 노조의 오랜 전통이다.

이 회사는 임금에 관한 단체협약은 4월에, 나머지는 1월에 실시하고 있지만
교섭이 빠른 시일내에 타결되는 편은 아니다.

그 대신 실무자간 접촉이 빈번하고 대화의 채널이 많기 때문에 교섭
과정에서 불필요한 대립과 갈등은 줄일 수 있다.

올해도 단체협약현안으로 떠오른 21일간의 유급휴가를 놓고 노사간
설전이 벌어졌다.

회사측은 21일의 연차휴가가 현재 수주여건에서 지나치게 많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공휴일이 겹치는 일요일이나 "샌드위치휴일"때 가급적 연차를
사용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회사측은 노조의 양보에 대해 퇴직금누진제의 강화를 약속했다.

IHI중공업은 1백40여년의 세월을 거쳐 축적된 기술력, 경쟁이 치열한
일본내에서의 경영경험, 평균 근속년수 18년에 이르는 종신고용제 등
기업경영에 유리한 모든 여건을 다 갖추고 있는 기업이다.

여기에다 노사협력의식과 함께 매년 경영협의회를 통해 노조측의
경영참가제도가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근로자들의 자질은 우수하고 산업안전 및 보건시스템도 잘 정비돼 있다.

지난해 무려 8천여억엔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세계초우량기업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이같은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했음에 틀림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