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의 남대문시장''

96 하계올림픽의 도시 애틀랜타 중심가에 위치한 종합 유통비즈니스센터
''어패럴마트''를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

한국에서 건너온 은종국 신정숙사장 부부가 이곳 2,000여 입주업체들에
유행시킨 ''남대문식 판매방식'' 때문이다.

은사장 부부가 운영하는 모조장신구(fashion jewelry)및 액세서리 매점
''골든 스텔라(Golden Stella)''의 판매방식은 바이어가 가게에 들러 진열장을
돌아보고 직접 물건을 골라 그 자리에서 결제하고 가져가는 소위 ''캐시 앤
캐리(Cash & Carry)'' 방식.

남대문 야시장을 찾는 한국의 옷장사나 액세서리 장사꾼들에겐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이 기법이 이곳 바이어들에게는 일대 혁명이었다.

한국 재래시장의 토종 판매기법이 선진국 상거래관습을 뒤흔들어 놓은
셈이다.

지금까지 미국 바이어들의 구매방식은 각 업체에서 보내온 샘플을 보고
주문서를 발송, 물건을 배달받는 ''선주문 후배달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방식의 가장 큰 취약점은 물건이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데 있다.

물건배달에 대개 4~6주가 소요돼 특히 유행에 민감한 액세서리 등을 제값을
받고 팔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주문한 물건의 납품률도 65%를 밑돌 정도로 저조해 바이어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새로운(?) 마케팅 기법으로 유행에 민감한 액세서리 취급 바이어들을
매료시킬수 있었던 은사장 부부는 처음 매장 17평의 소규모로 출발한
골든 스텔라를 미국내 10대 모조장신구 도매상으로 변모시킬수 있었다.

또 어패럴마트 내에서 뿐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캐시 앤 캐리'' 방식의
마케팅에 대한 관심을 끌어 모았다.

그 결과는 이 방식의 판매방식을 채택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은사장 부부가 처음 액세서리 사업에 나선 것은 지난 87년.

부친(은호기장로)으로부터 한국음식점을 물려받아 운영하던 은사장은
식당이 평생 사업이 될수 없다는 생각에 새로운 사업을 물색했다.

마침 부인 신정숙씨가 78년 이민와 결혼할 때까지 유태인이 운영하는
뉴욕의 모조장신구 도매상에 근무한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 사업을
해보기로 뜻을 모았다.

조그만 액세서리 매장으로 사업을 시작한지 10년.

이제 이들은 종업원 20명, 거래 바이어 7,000여명에 연 3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미국내 10대 모조장신구 도매업자로 성장했다.

미국의 신용평가기관 던 앤 브래스트리트(DUN & BRASTREET)는 골든 스텔라
를 ''필요한 경우 30만~50만달러까지 신용대출 가능''한 업체로 평가했다.

"코끼리의 코끝은 위쪽으로 쳐들려 있어야 합니다"(은사장)

은종국사장 부부의 성공을 단순히 한국식 마케팅방식의 승리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지역 소비자들의 특성과 취향을 정확히 읽어낼수 있었던 이들의
능력이 더 큰 몫을 해냈다.

예컨대 코끼리의 코가 땅을 향해 처져 있는 것은 미국 사람들에겐 불행을
의미하며 하늘을 향해 쳐들려 있으면 행운을 의미한다는 식이다.

코끼리의 코끝이 처져 있으면 아무리 정교하고 깜찍하게 만든 액세서리라도
팔리지 않는다는 것.

이렇게 소비자의 특성을 속속들이 알게 되기까지 이들이 겪은 어려움과
뼈저린 경험들은 남다르다.

특히 액세서리류는 유행에 민감한 제품이라 더욱 그랬다.

뉴욕이라는 대도시의 고객들만 상대해왔던 신정숙씨가 극히 보수적인
애틀란타의 소비자들을 상대로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이미 시행착오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예견돼 있었다.

"같은 물건도 개당 1달러를 붙여 놓으니 바이어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다가
2달러로 가격을 바꿔 붙이니 불티나게 팔리더군요"(은사장)

옛 남부지방의 문화가 그대로 살아있는 애틀랜타 지방의 소비자들은
마음에 든다고 싸구려 물건을 마구 사재기하는 뉴욕의 고객들이 아니었다.

자신의 옷과 헤어스타일에 따라 분위기있는 중고급 액세서리 귀고리 팔찌
핀 등을 알맞게 골라 사되 가격에는 그다지 구애받지 않는 사람들.

그 특성을 알게 된 후 채택한 중고급형 상품 위주의 판매전략이 적중했다.

한국의 상인들이 허영심 많은 고객들을 상대로 써먹고 있는 판매기업이
미국 동남부의 중상류층 소비자들에게도 먹혀 들었다는 얘기다.

각종기념일 등 항상 ''무슨날''을 기다리고 챙기는 미국인들의 생활패턴도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생일날이나 결혼기념일 등은 물론이고 새해 첫날 부활절 어머니날
아버지날 추수감사제 등 수많은 기념일 때마다 이들은 백화점이나 상점에서
알맞은 선물을 산다.

모조장신구 등이 이런 각종 ''날''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물론이다.

시의 적절한 상품을 기획하고 내놓아야 했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이제 골든 스텔라는 미국내 거의 모든 제조업체들이
다음해 내놓을 시제품을 맨먼저 보내 시장성을 검토해주도록 요청하는
''테스트마켓''이 됐다.

매일 4~5개 제조업체에서 은종국사장 부부는 이 샘플을 검토해 그
유행가능성을 판단하고 더욱 잘 팔리게 하려면 어떻게 모양이나 색상을
바꿔야 할지 시장반응을 전달해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감이다.

제조업체들이 수개월후 또는 1년뒤 유행시킬 목적으로 오랜 연구 끝에
개발해낸 시제품에 대한 정보는 중요한 사업기밀.

이 기밀이 타업체에 알려지면 검토를 의뢰한 업체는 막대한 손실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수민족인 한국인 이민자로서 제조업체나 바이어들로부터 이렇게
신뢰를 얻기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처음 점포를 열었을때 가게에 반쯤 발을 들여 놓던 바이어들이 주인을
보고난후 그냥 나가버리기 일쑤였다.

전시회가 있을때 떼지어 나타난 바이어들이 무어라 수근대다 다른 매장으로
가기도 했다.

"''동양인이 어떻게 유행의 첨단인 모조장신구를 알겠는가.

여기는 볼 것도 없다.

대충 그런 얘기 아니겠어요"(신씨)

캐시 앤 캐리 방식의 히트로 어패럴마트에서 제법 유명해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입주자회의때 입주자협회 이사회에서 이 마케팅방식은 어패럴마트에서
허용되지 않는 것이니 당장 기존 주문방식으로 바꾸거나 어패럴마트를
떠나라는 압력이 들어왔던 것.

직접 매장에 찾아와 항의하는 경우도 많았다.

짧은 영어실력으로 이들을 설득하고 호소하기란 피눈물나는 일이었다.

골든 스텔라는 이제 대부분의 미국 제조업체들과 거래관계를 갖게
됐지만 한국 업체들과의 거래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품질면에서 미국제품에 손색이 없는 한국산 모조장신구가 제대로 값을
받지 못하고 있어요"

보다 많은 한국 업체들과 거래를 갖고 싶지만 아이디어가 진부하거나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지 못한 제품들이 많다는 것.

이들이 들려준 ''코끼리 코'' 이야기도 한국 업체가 만든 핀 샘플에
대한 것이란다.

한국산 코끼리 액세서리는 ''불행''을 의미하는 ''땅을 향한 코''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은종국사장은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중반까지 세계를 석권했던 한국의
모조장신구가 중국 등 아시아 후발개도국의 저가전략에 밀려 경쟁력을
잃어가는 것을 안타까워 한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의 세공기술은 최고수준이며 참신한 아이디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코끼리 코의 ''교훈''이 의미하는 것처럼
미국인들의 일상생활, 문화를 파고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 액세서리류의 경우는 생산자가 소비자의 욕구를 미리 창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미국의 창작품을 가져다 유사품을 만들어 헐값에 내놓는
단기전략은 삼가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손상시키며 미국의 유통구조를 혼란케해 결국 한국
산업 전체의 손해가 될 뿐이라는 지적이다.

<김주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