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6년 2월 도성공사를 끝낸 태조 이성계는 그해 4월19일 한성부의
관할구역을 5부 52방으로 정했다.

또 9월24일에는 도성 각 문의 이름도 지었다.

동부12방, 남부11방, 서부11방, 북부10방, 중부8방 등 모두 52방의
이름 가운데 지금까지 동명으로 쓰이고 있는 것은 태평 적선 가회
안국 순화를 꼽을 수 있을 정도다.

태조때 52방은 세종대에 49방으로 됐다가 제26대 고종초에는 47방
339계로 바뀌었다.

그리고 1894년 갑오경장때 5부를 5서로 고치는 동시에 계와 동을
늘려서 47방 288계 775동으로 정했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조선총독부는 한성부를 경성부로 고치고
경성부에 5부8면제를 채택해 성내는 5부 36방으로 나누었다.

그뒤 1913년 5부8면제를 폐지하고 그해 4월1일 경성부 186개의 동
정 정목의 명칭과 구역을 공포했다.

해방을 맞은 서울시는 1946년 10월1일을 기해 왜식 동명을 없애고
한성부때부터 써오던 유서 깊은 동명 또는 위인 선철의 아호를 따서
동.가.로로 개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불과 100여년 전인 1880년대에 서울에 왔던 미국인 선교사 조지
길모어는 서울이 중세때와 같은 성곽도시로서 대로는 동서를 관통해
동대문에서 끝이나는 것과 이 길과 직각으로 뻗어 있는 광화문으로
뚫린 큰길과 남대문으로 통한 길 등 3개뿐이라고 소개했다.

당시 서울의 인구는 21만명으로 1800년의 런던인구가 95만, 파리의
인구가 50만이었다는 것과 비교해 보면 서울은 생각보다 꽤 큰 도시였던
셈인데도 도로사정을 포함한 도시계획면에서는 길모어의 말처럼 중세에
머물러 있었음을 알게 된다.

정부가 2000년까지 전국의 모든 도로에 이름을 붙이고 건물엔 번호를
부여하는 선진국형 주소제도를 실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일제때인 1910년 조세징수를 위해 읍면동과 토지번호를 결합해 만든
번지의 무질서가 한계상태에 이르러 서울에는 한 번지안에 심지어
3,000여채의 집이 들어서 있는 곳도 있다.

그래서 서울에서 번지만 가지고 집찾기는 엄두도 내기 힘들 지경이다.

새 주소제도가 시행되면 국민의 편익이 증대되는 것은 물론 물류비용의
절감, 도시교통의 원활 등 여러가지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니 기대해
볼만하다.

골목길 사이길의 이름도 일제때 없앤 고운 한글지명을 따다가 쓴다면
삭막한 도시가 한결 정겨워질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