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 한국경제연 연구위원 >

박승교수님께

수도권집중을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난 7월1일자
한국경제신문 3면에 실린 교수님의 글을 보고 다른 견해를 갖고 있어
몇자 적어 올립니다.

저는 줄곧 수도권정책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수도권문제는 질병이 아니라 성장통일 뿐이라는 생각에서이지요.

지금의 수도권정책은 성장통을 없애기 위해 성장자체를 멈추게 하려는
시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 말을 오해합니다.

마치 수도권을 무정부 상태로 방치하자는 말 쯤으로 여기더군요.

오해입니다.

제 주장은 수도권 문제를 서울시나 경기도 인천시 같은 지방정부들
스스로 해결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역설같이 들리지만 중앙정부의 수도권정책이 없어질 때에 비로소
수도권에서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 동안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제가 배운 것이 있다면 법으로 독점을
보장하는 것이 매우 나쁘다는 사실입니다.

정부라 하더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중앙정부는 경쟁상대가 없기 때문에 무능해질 가능성이 높지요.

그렇다고 지방정부가 완벽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늘 다른 지방정부와의 경쟁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또 주민의
감시가 쉽기 때문에 중앙정부보다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지요.

지난 1년간 열악한 현실속에서도 민선 단체장들이 유권자 만족을 위해
뛰는 것을 보면서 경제학의 가르침이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느꼈습니다.

권력의 지방이양이 제대로 된다면 교수님께서 염려하시던 교통이나 환경
같은 소위 "생활공공재"의 문제도 차츰 해결되어 나갈 것 같습니다.

여론조사결과들을 보니까 그런 문제들이 자치단체장에 대한 요구중
늘 높은 순위를 차지하더군요.

그러니 다음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라도 그런 문제와 싸워나가지
않겠습니까.

조순 시장 같은 분들이 중앙정부에 대고 권한을 이양해 달라는 것도
결국은 이런 문제들을 자신들의 손으로 해결하겠으니 그 수단을 돌려달라는
것 아닐까요.

그런 요구를 단순한 권력욕으로 치부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권력을 분산함에 있어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기득권층의 반발"이라는
가르침이 새삼 기억납니다.

교수님께서도 그런 생각이셨다면 이참에 지방의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을
한번 믿어 보시지요.

물론 성에 안 차시겠지만 이제 겨우 1년이 지났을 뿐입니다.

몇년만 지나면 잘 할 것입니다.

아마도 수십년동안 같은 업무를 해온 중앙의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을
수년 안에 따라잡게 되겠지요.

그런 것이 경쟁의 이점이라고 봅니다.

어떤 분들은 지방정부에 맡겨 놓았더니 도처에 갈비집이나 러브호텔
같은 것만 잔뜩 들어서지 않았느냐고 비난을 퍼 붓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난개발은 오히려 지방의 자율권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 아닐까요.

교수님이 지적하신대로 선진국들은 우리 보다 훨씬 세밀하고 까다로운
토지이용규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한가지 사실은 그런 규제들이 그 지방의 주민들에 의해
스스로 자신들의 행위를 규제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지방 주민들도 스스로 그렇게 하는 연습을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지방정부들이 중앙정부의 사슬로부터 풀려나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수도권정책은 가장 굵은 사슬인 셈이지요.

교수님께서는 중앙정부가 강력한 힘으로 수도권집중을 막아야 한다고
하시지만, 수도권집중에 관한 한 가장 잘 듣는 약은 권력의 지방분산이라고
저는 배웠습니다.

서울의 중앙정부가 돈과 인허가권을 모두 쥐고 흔드는 세상에 누구인들
서울 주변에 붙어 있고 싶지 않겠습니까.

수도권에 기업들이 모여드는 것은 매우 당연하지요.

아니 당연한 정도를 넘어서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경제
발전을 이루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인구와 기업의 집중이 필요합니다.

권력은 그대로 놔두고 민간인들만 분산시킨다는 것은 성장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성장과 분산을 동시에 얻으시려 한다면 중앙정부가 스스로 권한을 지방에
넘겨야 할 것입니다.

수도권정책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다른 지방의 발전을 위해서 수도권이 억제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방자치의 원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시장개방의 물결
때문에 실현성도 없는 주장입니다.

모든 지방이 고르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고르게 퇴보하거나 고르게
정체될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져 가고 있지요.

결국 현재의 수도권정책이란 별로 얻는 것도 없이 비용만 너무 큰 정책
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뉴스위크지의 대도시집중에 관한 특집기사에서 읽은 새터스웨이트
교수의 말은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사람들이 대도시로 이주하는 것을 막는 것은 완전히 미친 짓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