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인터뷰] 프란시스 후쿠야마 <박사>에게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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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후쿠야마 박사는 지난 89년 "역사는 끝났다"고 선언, 전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일본계 미국인인 후쿠야마 박사는 당시 전세계를 격렬한 논쟁으로 몰아
넣었던 논문 "역사의 종언"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에
대해 승리를 거뒀다고 판정했다.
그후 러시아와 동구가 붕괴되면서 후쿠야마박사의 날카로운 통찰력은 집중
조명을 받았다.
후쿠야마 박사가 이번에는 "트러스트"라는 새 저서를 통해 한 사회의 신뢰
수준이 경제에 중요한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갈파했다.
신뢰는 거래비용을 줄이고 사회를 매끄럽게 돌아가게 함으로써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강연차 방한한 후쿠야마 박사를 만나 한국등 아시아 경제의 미래와 역사의
종언이후 동구정세등에 대해 들어봤다.
=======================================================================
*** 후쿠야마 박사 약력 : 영국 옥스퍼드대(그리스 고전연구)
미 하버드대 박사(소련및 동유럽연구)
미 국무부 정책기획실 부실장
미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미 조지메이슨대학 교수
''역사의 종언'' ''트러스트'' 등 다수의 저서
=======================================================================
-최신 화제작 "트러스트"에서는 "신뢰"가 한 나라의 경제.사회의 주요
결정요소라고 지적했는데.
<>후쿠야마=신뢰는 모든 거래에 따르는 비용을 줄이고 사회를 효율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따라서 신뢰는 경제에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그렇다고 신뢰가 한 나라의 경제를 전적으로 결정짓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중요성에 비해 쉽게 간과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주류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통화및 재정정책, 경제혁신등도 물론 중요한
경제결정 요소이다.
그러나 신뢰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한국은 신뢰도가 낮은 나라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경제전망도 어둡다는 얘긴가.
<>후쿠야마=한국, 중국, 이탈리아등 이 책에서 분석대상으로 삼은 나라들은
모두 경제적으로 어느정도 성공한 사례이다.
다만 이들가운데 상대적으로 신뢰도를 평가한 것이다.
전세계를 평균하면 한국도 결코 신뢰도가 낮은 것은 아니다.
단지 혈연관계가 아닌 가족외 구성원에 대해서도 신뢰를 보내는 개방적인
일본의 기업풍토에 비해 한국은 대기업집단(재벌) 중심으로 기업이 돌아가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을 뿐이다.
물론 한국은 신뢰도가 낮은데도 불구하고 강력한 정부주도의 경제성장
정책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한국형 모델이 다른 아시아 각국의 성장발전 표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과도한 파워는 부패를 낳기 때문이다.
현재 권위주의적 정부하에서 번영을 누리고있는 싱가포르도 결국은
민주주의로 갈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강력한 의지를 가졌다 하더라도 청렴을 유지할
수있는 것은 잠시뿐이기 때문이다.
권위적인 개발주도형 정부는 발전상의 특정단계에서만 한정적으로 가능할
뿐이다.
-그러나 일본은 경제발전에 걸맞는 정치및 관료의 발전을 이루지 못하지
않았는가.
<>후쿠야마=정치적 상황은 현재 교착상태에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때 올바른 발전방향으로 가리라고 본다.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치러질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의 파워는 쇠락할
것이다.
물론 일본의 정치발전이 외부의 기대보다훨씬 느린 속도로 이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계속될 것임은 틀림없다.
관료의 경우에도 대장성의 권력집중등 많은 문제점이 남아 있다.
대부분은 버블경제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금융체제 붕괴의 결과로 일본 금융기관들도 미국이나
유럽처럼 체계적인 보고및 회계규정에 따라 운영되는 합리적 조직으로
변신할 것이다.
-일본은 신뢰도가 높다고 지적했지만 다이와은행이나 스미토모상사등 일본
의 대표적인 기업들이 잇달아 국제적인 금융스캔들을 일으키는등 오히려
최근들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후쿠야마=일본은 분명 고도의 신뢰사회다.
스미토모, 다이와 스캔들은 어떤 면에서는 "과잉신뢰"에서 비롯된 부작용
이다.
실제 일본기업에는 거래에 대한 통제나 보고절차가 없다.
중요한 결정사항도 직원들이 알아서 처리할 정도의 절대적 신뢰사회다.
앞의 두가지 경우는 부작용이 나오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분명히 고도의
신뢰가 한 나라의 경제에 큰 이득이 된다.
신뢰가 두터우면 효율적인 협상이 가능하고 따라서 거래비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연성을 확보하고 권위주의를 피할수 있다.
-새책에서 한국기업의 족벌체제는 혈연중심, 장자중심의 가족제도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본도 산업화초기에는 족벌체제로 기업이 운영됐다는 점에 비춰
보면 이런 현상은 가족제도 보다는 산업발전 단계와 더 깊은 관계가 있는게
아닌지.
<>후쿠야마=물론 경제발전 단계와도 관계가 있다.
한국 재벌기업의 가족 통제는 산업발전과 함께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간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일본의 전전 재벌기업도 족벌체제로 운영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은 19세기초에 이미 고도의 전문경영체제로 옮겨갔다.
스미토모, 미쓰이등 대표적인 재벌기업들도 대부분이 창업자 가족들은
경영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직도 창업자의 가족들이 경영의 핵심에 서 있다.
일본대기업들의 가이레쓰(계열)체제는 언뜻 보기에 한국의 재벌기업과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다르다.
일본은 계열사를 강력히 통제하는 중앙기구가 없다.
반면 한국의 재벌은 창업주의 자손이 중심에 서서 주력사업을 직접 챙긴다.
일본의 게이레쓰보다 훨씬 중앙집권적이라는 얘기다.
더욱이 일본의 경우 16,17세기에 이미 기업에 대한 가족통제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비혈연인 양자를들이는 경우도 허다했다.
당시 오사카 상인층에는 사업을 아들에게 물려 주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었다.
2대째 내려오면 이미 전문적인 경영자가 등장했다.
이런 현상은 메이지 유신이전, 산업화 이전에 이미 일어났다.
일본은 상당히 일찍 전문경영쪽으로 옮겨간 셈이다.
이런 차이는 단순히 발전단계라기 보다는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은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라는 점에서 21세기에는
하이테크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대만이 유리할 것이란 분석도 있는데.
<>후쿠야마=하이테크산업의 경우 혁신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빠르고 조직이 유연한 중소기업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정말 예측하기가 힘들다.
같은 첨단분야라도 반도체산업은 공장하나를 세우는데 10억달러 이상씩
들기 때문에 대기업이 유리하다.
반면 소프트웨어산업은 대기업이 오히려 불리하다.
따라서 어느쪽이 좋다고 말할수는 없다.
정보기술시대에는 작은 조직이 유리하다고 지적하는 경제학자도 많다.
미국의 대기업들이 조직을 쪼개는 것(스핀오프)도 이때문이다.
정보화, 전문화사회가 진전될 수록 기업들은 주특기(주력사업)만 살리고
나머지는 해당분야의 전문기업에게 아웃소싱(외부위탁)한다.
덩치가 크면 다른 기업과 거래할때 비용이 더든다.
여기서도 신뢰는 중요한 힘을 발휘한다.
신뢰도가 높은 사회에서는 아웃소싱 비용이 적게드는 반면 신뢰도가 낮은
사회에서는 비용이 높다.
많은 사람들이 풍부한 자료, 품질, 비용등을 결정짓는 것은 단지 기술적
문제로만 치부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사실 현대기업은 "버추얼 기업화"하고 있다.
반도체업체를 예로 들면 반도체설계만을 해당 기업에서 할뿐이지 나머지
조립은 하청기업에 아웃소싱한다.
따라서 기업의 미래가 다른 기업에 달려 있다는 뜻이며 여기서 신뢰가
기초되지 않으면 기업의 생존력은 줄어들게 된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비행기폭발사고로 문을 닫게 된
미밸류제트가 대표적인 예이다.
밸류제트는 관리 거의를 아웃소싱에 맡겼다.
그러나 하청기업과 밸류제트사이에는 커뮤니케이션이 원활치 못했고
비행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몰랐다.
-신뢰는 문화에 의해 결정된 것이며 따라서 바뀔 수 없는 것인가.
<>후쿠야마=신뢰는 문화와 제도가 빚어낸 산물이다.
그러나 사회가 변하듯 신뢰수준도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의 경우는 비교적 고도의 신뢰사회지만 점차 낮아지고 있다.
미국은 현재 범죄율 증가, 소송율 증가 등으로 GDP가 줄어들고 있다.
소송비용은 경제활동에 붙는 일종의 추가 세금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범죄증가도 경찰등 치안인력 비대화를 초래해 경제에 커다란 짐을 지우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인종, 민족등의 분열 때문에 조직을 혁신시켜 협력적인 분위기로 끌고 가는
능력이 분산되고 있다.
개인적 자유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사회이념 때문에 정부등의 제도적 노력
으로 신뢰를 회복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신뢰를 높이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후쿠야마=그렇지 않다.
조직내 사회자본, 즉 신뢰를 풍부히 하려는 노력에 따라 신뢰가 높아질
수도 있다.
최근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자동차생산시스템이 대표적인 예다.
일본 자동차 공장에서는 화이트컬러가 공장관리를 하는게 아니라 블루컬러
스스로가 팀 조직과 생산툴 결정까지 모든 책임을 맡도록 한다.
말하자면 권위를 블루컬러에게 일임함으로써 공장에서 고도의 신뢰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결과 자동차 생산에서 굉장한 효과를 봤다.
한국기업이 본받을 만한 신뢰구축의 한 방법이다.
-이번주에 있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공산당 후보인 주가노프가 승리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만약 "역사의 종언"에서 내린 결론은 틀린게 아닌가.
<>후쿠야마=옐친이 패배하리라곤 생각지 않는다.
공산당 지지세력이 퇴직한 노인들이나 개혁경제의 낙오자들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주가노프는 젊은층의 지지를 거의 얻지 못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주가노프가 패배하면 공산주의지지기반은 급속이 약화될
것이다.
설사 당선된다 하더라도 공산주의의 부활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군사쿠데타는 더더군다나 생각하기 힘들다.
체제이양에 따른 혼란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현상이다.
-북한의 남침가능성은 어느정도라고 보는가.
<>후쿠야마=한국은 북한의 남침가능성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북한도 남침을 시도하면 정권이 끝장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미군과 한국의 억지력이 현재처럼 강력한 수준을 유지하는 한 그럴 가능성
은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일자).
충격을 던졌다.
일본계 미국인인 후쿠야마 박사는 당시 전세계를 격렬한 논쟁으로 몰아
넣었던 논문 "역사의 종언"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에
대해 승리를 거뒀다고 판정했다.
그후 러시아와 동구가 붕괴되면서 후쿠야마박사의 날카로운 통찰력은 집중
조명을 받았다.
후쿠야마 박사가 이번에는 "트러스트"라는 새 저서를 통해 한 사회의 신뢰
수준이 경제에 중요한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갈파했다.
신뢰는 거래비용을 줄이고 사회를 매끄럽게 돌아가게 함으로써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강연차 방한한 후쿠야마 박사를 만나 한국등 아시아 경제의 미래와 역사의
종언이후 동구정세등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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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쿠야마 박사 약력 : 영국 옥스퍼드대(그리스 고전연구)
미 하버드대 박사(소련및 동유럽연구)
미 국무부 정책기획실 부실장
미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미 조지메이슨대학 교수
''역사의 종언'' ''트러스트'' 등 다수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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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화제작 "트러스트"에서는 "신뢰"가 한 나라의 경제.사회의 주요
결정요소라고 지적했는데.
<>후쿠야마=신뢰는 모든 거래에 따르는 비용을 줄이고 사회를 효율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따라서 신뢰는 경제에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그렇다고 신뢰가 한 나라의 경제를 전적으로 결정짓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중요성에 비해 쉽게 간과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주류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통화및 재정정책, 경제혁신등도 물론 중요한
경제결정 요소이다.
그러나 신뢰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한국은 신뢰도가 낮은 나라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경제전망도 어둡다는 얘긴가.
<>후쿠야마=한국, 중국, 이탈리아등 이 책에서 분석대상으로 삼은 나라들은
모두 경제적으로 어느정도 성공한 사례이다.
다만 이들가운데 상대적으로 신뢰도를 평가한 것이다.
전세계를 평균하면 한국도 결코 신뢰도가 낮은 것은 아니다.
단지 혈연관계가 아닌 가족외 구성원에 대해서도 신뢰를 보내는 개방적인
일본의 기업풍토에 비해 한국은 대기업집단(재벌) 중심으로 기업이 돌아가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을 뿐이다.
물론 한국은 신뢰도가 낮은데도 불구하고 강력한 정부주도의 경제성장
정책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한국형 모델이 다른 아시아 각국의 성장발전 표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과도한 파워는 부패를 낳기 때문이다.
현재 권위주의적 정부하에서 번영을 누리고있는 싱가포르도 결국은
민주주의로 갈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강력한 의지를 가졌다 하더라도 청렴을 유지할
수있는 것은 잠시뿐이기 때문이다.
권위적인 개발주도형 정부는 발전상의 특정단계에서만 한정적으로 가능할
뿐이다.
-그러나 일본은 경제발전에 걸맞는 정치및 관료의 발전을 이루지 못하지
않았는가.
<>후쿠야마=정치적 상황은 현재 교착상태에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때 올바른 발전방향으로 가리라고 본다.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치러질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의 파워는 쇠락할
것이다.
물론 일본의 정치발전이 외부의 기대보다훨씬 느린 속도로 이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계속될 것임은 틀림없다.
관료의 경우에도 대장성의 권력집중등 많은 문제점이 남아 있다.
대부분은 버블경제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금융체제 붕괴의 결과로 일본 금융기관들도 미국이나
유럽처럼 체계적인 보고및 회계규정에 따라 운영되는 합리적 조직으로
변신할 것이다.
-일본은 신뢰도가 높다고 지적했지만 다이와은행이나 스미토모상사등 일본
의 대표적인 기업들이 잇달아 국제적인 금융스캔들을 일으키는등 오히려
최근들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후쿠야마=일본은 분명 고도의 신뢰사회다.
스미토모, 다이와 스캔들은 어떤 면에서는 "과잉신뢰"에서 비롯된 부작용
이다.
실제 일본기업에는 거래에 대한 통제나 보고절차가 없다.
중요한 결정사항도 직원들이 알아서 처리할 정도의 절대적 신뢰사회다.
앞의 두가지 경우는 부작용이 나오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분명히 고도의
신뢰가 한 나라의 경제에 큰 이득이 된다.
신뢰가 두터우면 효율적인 협상이 가능하고 따라서 거래비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연성을 확보하고 권위주의를 피할수 있다.
-새책에서 한국기업의 족벌체제는 혈연중심, 장자중심의 가족제도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본도 산업화초기에는 족벌체제로 기업이 운영됐다는 점에 비춰
보면 이런 현상은 가족제도 보다는 산업발전 단계와 더 깊은 관계가 있는게
아닌지.
<>후쿠야마=물론 경제발전 단계와도 관계가 있다.
한국 재벌기업의 가족 통제는 산업발전과 함께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간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일본의 전전 재벌기업도 족벌체제로 운영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은 19세기초에 이미 고도의 전문경영체제로 옮겨갔다.
스미토모, 미쓰이등 대표적인 재벌기업들도 대부분이 창업자 가족들은
경영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직도 창업자의 가족들이 경영의 핵심에 서 있다.
일본대기업들의 가이레쓰(계열)체제는 언뜻 보기에 한국의 재벌기업과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다르다.
일본은 계열사를 강력히 통제하는 중앙기구가 없다.
반면 한국의 재벌은 창업주의 자손이 중심에 서서 주력사업을 직접 챙긴다.
일본의 게이레쓰보다 훨씬 중앙집권적이라는 얘기다.
더욱이 일본의 경우 16,17세기에 이미 기업에 대한 가족통제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비혈연인 양자를들이는 경우도 허다했다.
당시 오사카 상인층에는 사업을 아들에게 물려 주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었다.
2대째 내려오면 이미 전문적인 경영자가 등장했다.
이런 현상은 메이지 유신이전, 산업화 이전에 이미 일어났다.
일본은 상당히 일찍 전문경영쪽으로 옮겨간 셈이다.
이런 차이는 단순히 발전단계라기 보다는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은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라는 점에서 21세기에는
하이테크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대만이 유리할 것이란 분석도 있는데.
<>후쿠야마=하이테크산업의 경우 혁신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빠르고 조직이 유연한 중소기업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정말 예측하기가 힘들다.
같은 첨단분야라도 반도체산업은 공장하나를 세우는데 10억달러 이상씩
들기 때문에 대기업이 유리하다.
반면 소프트웨어산업은 대기업이 오히려 불리하다.
따라서 어느쪽이 좋다고 말할수는 없다.
정보기술시대에는 작은 조직이 유리하다고 지적하는 경제학자도 많다.
미국의 대기업들이 조직을 쪼개는 것(스핀오프)도 이때문이다.
정보화, 전문화사회가 진전될 수록 기업들은 주특기(주력사업)만 살리고
나머지는 해당분야의 전문기업에게 아웃소싱(외부위탁)한다.
덩치가 크면 다른 기업과 거래할때 비용이 더든다.
여기서도 신뢰는 중요한 힘을 발휘한다.
신뢰도가 높은 사회에서는 아웃소싱 비용이 적게드는 반면 신뢰도가 낮은
사회에서는 비용이 높다.
많은 사람들이 풍부한 자료, 품질, 비용등을 결정짓는 것은 단지 기술적
문제로만 치부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사실 현대기업은 "버추얼 기업화"하고 있다.
반도체업체를 예로 들면 반도체설계만을 해당 기업에서 할뿐이지 나머지
조립은 하청기업에 아웃소싱한다.
따라서 기업의 미래가 다른 기업에 달려 있다는 뜻이며 여기서 신뢰가
기초되지 않으면 기업의 생존력은 줄어들게 된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비행기폭발사고로 문을 닫게 된
미밸류제트가 대표적인 예이다.
밸류제트는 관리 거의를 아웃소싱에 맡겼다.
그러나 하청기업과 밸류제트사이에는 커뮤니케이션이 원활치 못했고
비행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몰랐다.
-신뢰는 문화에 의해 결정된 것이며 따라서 바뀔 수 없는 것인가.
<>후쿠야마=신뢰는 문화와 제도가 빚어낸 산물이다.
그러나 사회가 변하듯 신뢰수준도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의 경우는 비교적 고도의 신뢰사회지만 점차 낮아지고 있다.
미국은 현재 범죄율 증가, 소송율 증가 등으로 GDP가 줄어들고 있다.
소송비용은 경제활동에 붙는 일종의 추가 세금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범죄증가도 경찰등 치안인력 비대화를 초래해 경제에 커다란 짐을 지우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인종, 민족등의 분열 때문에 조직을 혁신시켜 협력적인 분위기로 끌고 가는
능력이 분산되고 있다.
개인적 자유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사회이념 때문에 정부등의 제도적 노력
으로 신뢰를 회복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신뢰를 높이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후쿠야마=그렇지 않다.
조직내 사회자본, 즉 신뢰를 풍부히 하려는 노력에 따라 신뢰가 높아질
수도 있다.
최근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자동차생산시스템이 대표적인 예다.
일본 자동차 공장에서는 화이트컬러가 공장관리를 하는게 아니라 블루컬러
스스로가 팀 조직과 생산툴 결정까지 모든 책임을 맡도록 한다.
말하자면 권위를 블루컬러에게 일임함으로써 공장에서 고도의 신뢰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결과 자동차 생산에서 굉장한 효과를 봤다.
한국기업이 본받을 만한 신뢰구축의 한 방법이다.
-이번주에 있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공산당 후보인 주가노프가 승리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만약 "역사의 종언"에서 내린 결론은 틀린게 아닌가.
<>후쿠야마=옐친이 패배하리라곤 생각지 않는다.
공산당 지지세력이 퇴직한 노인들이나 개혁경제의 낙오자들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주가노프는 젊은층의 지지를 거의 얻지 못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주가노프가 패배하면 공산주의지지기반은 급속이 약화될
것이다.
설사 당선된다 하더라도 공산주의의 부활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군사쿠데타는 더더군다나 생각하기 힘들다.
체제이양에 따른 혼란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현상이다.
-북한의 남침가능성은 어느정도라고 보는가.
<>후쿠야마=한국은 북한의 남침가능성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북한도 남침을 시도하면 정권이 끝장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미군과 한국의 억지력이 현재처럼 강력한 수준을 유지하는 한 그럴 가능성
은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