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이렇게 들켜버렸으니 털어놓는 수밖에.

사실은 가사 대감이 원앙을 첩으로 삼으려고 하는데 원앙은 죽어도
싫다는 거야.

근데 안방 마님인 형부인까지 나서서 원앙을 꼬드기고 있단 말이야.

이 일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평아가 원앙의 문제를 습인에게 의논하였다.

습인이 잠시 생각하더니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어"

"그게 원데?"

평아와 원앙이 기대에 차서 습인을 바라보았다.

"원앙이 네가 대부인 마님에게 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대부인 마님이
가사 대감에게 이렇게 말하도록 하란 말이야.

너를 이미 다른 사람에게 주기로 했다고 말이야.

그러면 가사 대감도 원앙이 너를 포기할 거 아냐?"

"누구에게 주기로 했다고 말하면 좋지?"

"보옥 도련님에게 주기로 했다고 해도 되잖아"

그러자 원앙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며 언성을 높였다.

"난 싫어.

내가 무슨 물건이니?

이 사람에게 주고 저 사람에게 주고 하게?"

시녀의 신분을 잊은 듯 당당하게 소리 치는 원앙을 평아와 습인이 의아한
듯이 쳐다보았다.

그때 저쪽에서 원앙의 올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형부인이 너의 올케까지 동원한 모양이구나"

평아가 작은 소리로 속삭이는 사이에 원앙의 올케가 원앙 바로 앞까지
왔다.

"올케 언니 웬일이야? 대관원에까지 다 들어오고"

원앙이 시치미를 떼고 물으니 올케는 평아와 습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디 조용한 데로 가서 둘이서 이야기 좀 해"

"그냥 여기서 이야기 해. 무슨 일인데?"

올케가 자꾸만 머뭇거리며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이야기지? 나보고 첩이 되라는 그 이야기지? 가족들도 내가 가사
대감의 첩이 되기를 모두 원하고 있다는 말을 하려는 거지?"

"원앙 아가씨에게도 좋고 가족들에게도 좋은 일이잖아"

올케가 기어드는 음성으로 말했다.

"하긴 내가 대감의 첩이 되면 오빠는 대감의 처남이 되고 올케 언니는
그 덕분에 기가 펄펄 살겠지.

아버지, 어머니는 대감의 장인 장모라도 된 듯이 으스대며 돈을 뜯어낼
궁리나 할 테고.

딸은 첩이 되어 어떤 서러움을 당하며 사는지 모르고 말이야"

원앙이 분을 참지 못하고 그만 침을 올케의 얼굴에다 뱉어버리고는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