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독한 사랑"인가.

시인 채호기가 "그대 자궁속에 내 주검을 묻네"라고 노래한 "슬픔의
미학"이 이를 대변한다.

유부남과 처녀의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이명세감독 특유의 섬세함과
색채감, 동화적 상상력에 의한 몽환적 이미지, 그리고 들판의 바람처럼
거침없는 힘을 함께 보여준다.

예정된 이별앞에 던져진 두사람의 열병은 현실과 꿈의 간극을 끝없이
오간다.

그만큼 감정의 진폭도 크다.

시인이자 교수인 영민 (김갑수)과 문화부 여기자 영희 (강수연)가
"미친 사랑"에 빠져 술마시고 키스하고 호텔에 들어 탐닉한다.

허둥지둥 옷 챙겨입고 밖으로 나와 아는 사람 눈에 띌까 두리번 거리는
생활을 계속하던 둘은 겨울방학이 되자 바닷가에 "따뜻한 방 한칸"을
마련한다.

달빛이 비치는 창문과 별이 보이는 방안에서의 꿈같은 사랑은 때로
"헛된 장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삐걱댄다.

감독은 둘의 관계를 암시하기 위해 터널의 이미지를 자주 차용하고
잔잔한 물무늬에 흩날리는 모래바람, 초록벽면에 흰 수증기와 짙은
감색 유리컵을 클로즈업시키거나 백열전구의 필라멘트에 불이 들어오는
모습을 저속으로 잡아낸다.

그는 평범한 "불륜"을 높낮이가 큰 음폭으로 얘기해주다가 차츰
환상적인 색감으로 보여준다.

청각과 시각의 교차점에서 빚어낸 비애의 아름다움.

특히 눈덮힌 산과 원경으로 잡힌 실루엣, 은빛 세계에서 펼치는
"마지막 사랑"은 압권이다.

흑백 시퀀스로 스치는 화면이 방안의 격렬한 섹스신을 표백시키며
롱테이크로 비추는 이 장면은 한국영화 정사신중 "가장 아름다운 그림"
으로 평가될만 하다.

겨울바다를 연출하느라 소금 700가마를 동원하고 세트장에 트럭
4대분의 물.모래를 쏟아부은 감독의 열정이 이같은 영상미학을 단단하게
받쳐준다.

그가 한국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로 불리는 것도 이때문.

서른고개의 강수연 연기 또한 원숙미를 더한다.

( 15일 대한 씨네하우스 롯데월드 한일 명화 개봉 예정 )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