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계열화냐 전문화냐"

유화업계가 "투자자유화 시대"를 맞아 새로운 판짜기에 골몰하고 있다.

NCC(나프타분해공장)능력을 키워 "거대 유화업체"가 되느냐 아니면
특화제품을 생산해 해당 분야의 일등을 지향하는냐의 문제로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업체들마다 그동안 마련했던 "21세기 전략"을 새로 짜는 작업에 착수했고
세계 각국의 구조조정 사례를 연구하는 추세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정부가 투자를 제한하던 시절엔 "지침"대로만 하면됐다.

달리할래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올들어 유화투자가 자유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장기전망과 그에 바탕한 기업 자체의 투자결정이 필요하게 된 셈이다.

특히 NCC 신설과 관련, "돈 있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차이가
뚜렷해지면서 유화업계의 새 판짜기의 방향도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8개 NCC업체 가운데 올들어 차례로 제2NCC 신설 계획을 발표한 증설
계획을 발표한 현대석유화학 LG석유화학 한화종합화학 유공등은 일단
"수직계열화"를 통한 양적 확대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4개사는 PE(폴리에틸렌)공장을 신설했기 때문에 에틸렌이 필요해져
NCC를 지어야하고 NCC를 완공하고 나선 또 에틸렌이 남아 PVC공장을 다시
건설하는 식으로 양적 확대를 지향하고 있다.

이들 4개사가 투자키로 한 돈만 2000년까지 무려 2조원에 이른다.

현대 관계자는 "합성수지에 무한한 수요가 있는 중국시장을 옆에두고
공급과잉이 겁나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의 NCC증설계획이 발표되면서 일본이 동남아 현지투자부문을
재검토하고 있다며 "지금이 설비확장의 적기"라고 강조하고 있다.

계열제품 생산량에 비해 원료인 에틸렌이 부족해 매년 30만t 가까이
수입하고 있는 한화종합화학도 NCC를 증설해야 경쟁력이 높아진다며
수직계열화 전략을 밀어붙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LG와 유공도 수직계열화를 통한 양적확대를 21세기 전략의 골자로 정하고
있다.

이에 비해 삼성종합화학 대림산업 금호석유화학 대한유화등은 전문화
전략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대림 관계자는 "현재와 같은 과잉투자로는 지난 87-90년 있었던
NCC중심의 투자집중으로 심각한 공급과잉을 맞을 수도 있다"며 "양 경쟁"을
지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수천억원을 들여 NCC 증설에만 매달리면 고부가가치제품
생산은 꿈도 못 꾼다며 오히려 정밀화학투자등을 늘리는 것이 올바른
투자라고 강조했다.

국내 업체들인 지향하는 전문화 전략는 <>합섬원료 집중형 <>합성수지
집중형 <>일부품목 사업집중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삼성종합화학은 대표적인 합섬원료 일관형으로 전문화를 지향하고 있다.

삼성은 오는 2000년까지 폴리에스터 원료인 TPA를 국내외에서 2백만t
생산체제를 갖출 계획이다.

같은 화학소그룹 계열사인 삼성석유화학을 합치면 3백만t이 넘는다.

뒤늦게 유화업에 뛰어든 선경 고합등도 합섬원료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대림산업도 마찬가지다.

대림은 합성원료에 집중함과 동시에 가공사업을 확장하고 정밀화학
부문에서 의약사업진출을 검토하는등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일부품목 사업집중형으로는 폴리에스터의 부원료인 EG(에틸렌글리콜)를
중심으로 합성원료 분야의 전문화를 지향하고 있는 호남석유화학과
합성고무분야에서 1등을 지향하는 금호석유화학등을 들 수 있다.

석유화학협회 관계자는 세계 유화업계는 <>석유화학 생산자의 저변확대
<>한국 사우디등 새로운 수출국가들의 등장<>동남아 중국등 수입시장의
집중화<>공산권의 붕괴에 따른 러시아비중의 감소등에 따라 90년대 초반부터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다며 그 특징은 "규모의 거대화"라고 설명했다.

활발한 인수.합병을 통해 세계 1위의 영향력을 지향하고 있다는
덧붙였다.

국내 유화업계의 새판짜기도 규모의 거대화임은 분명하다.

전체적인 규모의 거대화(수직계열화)가 적절한지 아니면 일부품목의
거대화에 집중(전문화)하는 것이 옳은지는 아직도 연구대상이다.

< 권영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