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근원이 있다.
사회학자 W.G 섬너는 이 같은 형태의 애국심을 에스노센트리즘
( ethnocentriem ), 즉 외부집단에 대해선 공포와 적대감을 갖고 자기가
속하는 내부집단에 대해선 이상화하고 절대화하는 자연적 감정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근대적 애국심은 그것만으로 불충분했다.
근대적 애국심이란 유럽에서 봉건제도의 몰락과 민주주의의 발달을
조건으로 발전됐기 때문이다.
사실 애국심은 절대주의국가의 권력에 의해 조작되기도 했었고 또
자본주의 국가의 내부모순에 이용돼 침략주의적 성향을 띄게 된 경우도
많았었다.
현대민주국가에서의 애국심은 향토애, 직장이나 가족에 대한 애정을 서로
모순되지 않게 결부시킨 평화적 성격을 지니게 됐다.
따라서 침략자에 대해서 생활과 행복을 지키기 위해 애국심으로 단결하게
된다.
조금 의미는 다르지만 임진왜란때 각처에서 벌떼처럼 봉기했던 의병과
승병은 비록 당시 국가체제가 봉건왕조였지만 오직 나라와 겨레를 살리려는
자발적 애국심이었고 조작되거나 강요된 애국심은 아니었다.
보훈의 달을 맞아 어느 언론매체가서울시내 6개대학생 400여명을 대상으로
"제2의 6.25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는 의식조사를 한 결과 "자원
입대해 싸우겠다"는 학생은 30.2%에 불과했고 42.3%가 "피난하거나 해외로
도피하겠다"고 응답했다 한다.
표면상으로 보면 아주 비관적 응답이라고 할수 있다.
그들의 선배들은 6.25때 어린 중학생으로부터 장성한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모두 2만7,700여명이 학도의용군으로 자원해 실전에 참가했고 후방이나
수복지역에서 선무활동한 학생은 무려 20만명이나 됐었다.
특히 700여명의 재일교포학생들은 위난의 조국을 구출하기 위해 온갖
장애를 극복하고 참전해 59명이 전사했고 95명이 실종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하면 한층 한심스럽다.
그렇지만 평화시대 애국심에 대한 가상적인 의식조사는 별 의미가 없는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제2차 세계대전전 영국 옥스퍼트대학생에게 전쟁이 발발하면 참전
하겠느냐는 질문에 많은 학생이 부정적인 답변이었으나 실제 대전이
일어나자 거의 모두가 스스로 참전했다는 것이다.
애국심이란 평상시엔 가슴속깊이 잠재하는 심정이므로 비상시를 당해야만
자각하게 된다.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는 만큼 그들도 우리 향토와 가족을 사랑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