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유토피아".

현대상선 신용호선장(47)의 별칭이다.

한국 국적 LNG(액화천연가스)수송선 제 1호 "현대 유토피아"호의
선장이 되고나서부터 이 "우아한" 명칭은 줄곧 그를 따라다녔다.

재작년(94년)6월 1일에 평택~인도네시아 항로를 첫 취항했으니까
만 2년동안 "이상향 선장"을 맡은 셈.

멋진 명칭 덕택인지 신선장은 2년간 무사고 운항이라는 소중한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안전 모범 선장의 공로를 인정받아 해기사로는 드물게 훈장을 받는
경사도 맞았다.

"바다의 날"이었던 지난달 31일 대통령으로부터 석탑산업훈장을
수여받은 것.

선장이나 기관장이 각종 표창을 받은 사례는 많았어도 이번 처럼 수훈의
영예를 안은 것은 수십년래 처음 있는 일이다.

"LNG 소비자인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 드리기 위해 애쓴 결실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에 남는 일은 LNG선에 관한 교범조차 없던 실정에서 직원들과 함께
큰 맘먹고 운항 매뉴얼 책자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LNG선은 안전이 생명이기 때문에 전문가에 의한 철저한 원칙 운항이
요구되거든요"

신선장은 훈장을 받고나니 제일 먼저 꽉 짜여진 선상 생활이 눈앞에 아른
거렸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긴장의 연속이라는게 그의 실감나는 설명.

"LNG선은 극저온 상태의 위험 물질을 수송하는 특수선입니다.

운항 일정을 꼭 맞춰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조금이라도 늦으면 국내에선 당장 LNG 수급 상황에 비상이 생겨 일대
혼란이 생길 수도 있거든요.

매순간 초긴장 상태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는 기억속에서, 아찔했던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줬다.

지난 3월 대만 근해.

평택항까지는 빠듯하게 3일을 더 가야했다.

사태는 갑자기 본사에서 긴급 통신을 전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전속력으로 달리라는 명령이었다.

앞서 가던 LNG선이 기상 악화로 제 일정에 못 댄 것이다.

신선장의 입술이 바짝 바짝 타들어갔다.

느닷없이 속이 뒤틀리고 신트림이 나오면서 복통이 도지기 시작했다.

"대만쪽도 안개가 짙고 바람이 심해 하프 스피드로 운항하는 판이었는데
한국까지 3일 남은 상황에서 1일을 앞당기라는 것은 불가능한 지시였습니다.

본래 일정에 맞추기도 힘든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도 전화통은 불이나고....참 죽을 맛이었어요"

결국 신선장은 과속보다는 안전을 택했다.

다행히 제주도가 보이면서 날씨가 좋아져 시간을 앞당기지는 못했어도
당초 일정에는 맞출 수 있었다.

이런 때가 아니더라도 신선장은 안개가 엄습하거나 폭풍이 불어오면
몇일이고 잠을 설치기 일쑤다.

평택이나 인도네시아의 LNG기지항인 본탕과 블랑랑차에 정박할 때는
하선도 하지 않는다.

안전한 선적.하역작업을 위해서다.

"고생스럽지만 LNG선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안전하게 운항돼야
한다는 신념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유토피아호라는 이름도 제값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요"

< 심상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