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평온을 유지하던 노사관계가 6월들어 불안해지고 있다.

그것도 대국민 서비스를 임무로 하고 있는 공공사업장을 중심으로
노사관계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음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대표적인 공공노조인 한국통신 서울지하철노조 부산교통공단 한국조폐공사
노조는 지난4일 한꺼번에 당국에 쟁의발생 신고를 내고 본격적인 연대투쟁에
들어갔다.

공공노조가 쟁의발생 신고를 내기는 올들어 이들 4개 노조가 처음으로
올해 노사관계의 향방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란 점에서 관심을 끈다.

공공노조의 공동투쟁과 관련, 정부는 이들이 현행 노동관계법을 어기면서
까지 연대투쟁을 하거나 불법파업을 할 경우 모두 사법처리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정면충돌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는 상황이다.

국민과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공공사업체의 노조가 서로 연대해
국민을 불안케 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것은 이유를 불문하고 매우 유감스런
일이 아닐수 없다.

쟁의발생을 신고한 4개 공공 사업체들은 통신 교통 화폐발행등 그야말로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서비스업무를 위임받고 있는 곳으로
사소한 업무 차질도 있어서는 안되는 사업장들이다.

우리는 이들 공공노조가 본격적인 연대투쟁에 나서기 보다는 정부의
노사관계 개혁작업을 지켜보는 것이 문제를 풀어가는 순서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21세기 선진형 노사문화를 정착시킨다는 목표로 대통령 직속에
노사관계 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노동관계법 개정을 추진하는 등 매우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새로운 노동관계법에는 3자개입 금지조항의 철폐 등 노조측에 유리한
내용들이 많이 들어갈 것으로 보여 구태여 3자개입의 "불법"을 무릅쓰고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

같은날 쟁의발생을 결의하기로 돼 있던 현대중공업에서 노조 대의원들의
불참으로 계획자체가 무산돼버린 것도 "지금은 극한투쟁을 벌일 시기가
아니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 했으리라고 본다.

이번 공공노조 쟁의에서도 가장 큰 이슈는 여전히 임금인상률이다.

그만하면 됐다 싶을 정도의 소득 수준인데도 우리의 노사협상은 어제나
오늘이나 임금인상의 주변에서만 맴도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나라 근로자 가구의 소득은 80~86년 기간중 연평균 13.6%씩 증가한데
비해 87~94년 기간중에는 이보다 훨씬 높은 17.7%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근로자의 생활도 크게 향상된 것은 사실이다.

경쟁 상대국들과 비교해봐도 우리의 임금수준은 매우 높은 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노사협상이 임금인상에만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노동운동의 질적수준이 국민경제와 기업의 현실을 고려할 정도의 책임있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할수 있다.

특히 임금이 낮은 중소기업보다 임금수준이 높은 대기업 노조가 노동계의
임금인상 투쟁을 선도하고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우리경제는 지금 매우 어려운 시기에 진입하고 있다.

경기는 이미 하강국면에 접어들었는데 물가는 뒤고 국제수지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국민 모두가 마음을 다잡아먹지 않으면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할 위험이
크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공공노조가 임금때문에 연대투쟁에 나섰다는 것은
아무래도 국민의 지지를 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노조 관계자들의 냉철한 판단이 아쉽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