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으로부터 빛과 색채가 생겨났다''

이 색채는 인류의 삶과 살아가는 방식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이란 동요처럼 사악한 빨간 마음이
있었는가 하면 평온한 파란 마음도 있다.

더욱이 산업발전과 더불어 색채는 산업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흰색 냉장고가 히트를 치기도했고 컬러냉장고가 시장을 장악하기도 했다.

검은색과 흰색이 주도하던 자동차 색까이 청.홍.황.녹으로 다양해졌다.

마침 5월은 녹색의 계절이다.

주위가 색채로 가득차 간다.

이런 계절에 전영탁씨(77)를 만났다.

그는 현재 색채를 직접 만드는 알파색채 회장이다.

미술재료협회의 고문이기도 했다.

청년 미술작가상을 제정, 국내 색채발전에 앞장섰으며 지금도 대전
목원대와 계명대에 나가 강의를 맡고 있다.

물감을 만들기 시작한 지난 62년 이후 34년간을 색채만들기와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95년에는 미술계 발전의 공로로 문화체육부장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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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이 매우 조용합니다.

"이곳 평창동은 도심에서 가까우면서도 좀 외진곳이지요.

30여년간을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공장도 맨처음 이곳에 세웠고해서 흠뻑 마음에 들어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동산에 대해 너무 어두운탓도 있습니다."

-34년여를 한우물을 판다는것이 쉽지는 않았을텐데요.

그렇다고 큰돈을 버신것 같지도 않고요.

"돈이요.

돈벌려고 마음먹었으면 벌었지요.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가 확대일로를 걸어왔기 때문에 돈벌 기회가
많았습니다.

더우기 내가 일본 추오대(중앙대)상과를 졸업했기 때문에 이재에는
좀 밝은편이었지요.

우연찮게 들여놓은 "색깔"이 너무 좋아 지금껏 하고있습니다."

-43년 당시 추오대를 졸업하셨으면 국내인맥이 대단하실텐데요.

또 물감하고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습니까.

"전에 외무장관 하시던 김용식장관 보사부장관했던 고재필장관
몇일전에 타계하신 한신장군등이 추오대 출신입니다.

특히 한신장군하고는 함경남도 영흥 고향도 같고 학교도 같이 다녀
매우 절친했습니다.

타계한것이 남의 일같지않아 마음이 좀 우울합니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함남 단천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상업을 가리켰습니다.

같은 학교 가정선생이었던 여선생과 결혼도했지요.

해방이되면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선생노릇을 다시할까도 했지만 답답한 마음이들어 다른직업을 택하기로
했지요.

그래 공장을 차렸습니다.

간장을 만드는 한천식품화학공업사를 운영했습니다.

공장은 그런대로 잘됐습니다."

-물감은 어떻게 손대셨습니까.

"일본에 있는 친지가 같은 화학공장이니 물감을 만들어 보라고 권했지요.

일본에서는 물감공장이 잘된다는 설명과 함께.

그래 물감에 관한 책을 사보내라고 했습니다.

책만보고 무조건 대들었지요.

당시 물감은 모두 일제 수입품이라 대체가 가능할것이고 특히
국민학생들이 일제를 쓰고있는데 몹시 분개했습니다.

해방이됐는데도 뭔지 모르게 일본에 종속되고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본서 학교다닐때 일본학생들에 받았던 수모가 되살아 나는것 같았지요.

허지만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책만 보아서는 도저히 물감을 만들수가 없었습니다.

밤새도록 책을 봐가면서 연구를 했지만 노하우를 터득할수가 없었습니다.

신문에 기술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냈습니다.

기술자가 있을턱이 없었지요 .

광고를 보고온 기술자가 나만도 못했습니다.

때문에 혼자서 밤새도록 연구하고 낮에는 갖가지 재료를 배합 물감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무수한 시행착오끝에 62년 전문가용 그림물감을 개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성공당시 기분이 어땠습니까.

"당시 3공화국시절 수출드라이브 정책으로 소비재는 수입을 못했지요.

첫제품을 홍대와 서울대 미대에 보냈더니 학생들이 대환영을 했습니다.

미대학생들경우 물감이 없어 마음놓고 그림을 그리지 못했으니까요.

특히 보라색과 핑크색 물감이 부족했습니다.

때문에 만들기만하면 다팔려 신바람이 났습니다."

-색의 종류는 얼마만큼 되고 지금까지 만든색은 몇가지나 되는지요.

"자연계에는 1여만종의 색이 살아 숨쉬고있습니다.

한포기의 나무와 한줌의 흙도 나름대로의 색을 가지고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모방해 만들수있는 색은 2천여종밖에 되지않습니다.

최근 컴퓨터그래픽을 통해 자연의 색을 제대로 구현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있지만 이역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연이 가지고있는 색은 생명이 있기때문이지요.

인간이 그색을 옮길려고하면 이미 죽은색이 돼버려요.

파도가 치면 그색은 하얗지요.

겨울의 눈색깔도 하얗지요.

이들 색깔은 인간이 모방을 못 시키는것들중의 하나입니다."

-색깔의 역사를 간단히 말씀해 주시지요.

"태초에 빛이 있었다는 성경구절도 결국 색과 통합니다.

인간역사의 발전과정은 색채의 발전과정이었습니다.

인간은 색깔의 재료를 초창기에 자연에서 구했습니다.

식물의 잎에서 푸른색을 황토흙에서는 붉은색을 구했지요.

차츰 발전해 화학적 반응을 통해 색깔을 만들었습니다.

200년전 네덜란드의 반다크 형제가 화학반응을 이용 대량생산이 가능한
공장생산을 시작한것이 처음입니다.

이때 생산한것이 전통그림 색깔인 유화물감이었지요.

그후 미국이 2차대전이 끝나고 군수물자를 팔아 생활이 넉넉해지자 삶의
질이 요구되기시작했습니다.

미국민이 전통적인 유럽의 향수를 느끼기 시작, 그림에 대한 특수가
생겼습니다.

때문에 물감에대한 특수가 생겼지요.

물감공장도 이때에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습니다.

수채화, 유화등 물감의 질이 화단의 풍류를 갈라났습니다."

-색이라는것이 묘한것 같습니다.

각 민족마다 좋아하는 새깔이 있는것같습니다.

예를들어 한민족은 흰색을 좋아하는 백의민족 중국민은 붉은색을
선호하는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특별한 이유는 없는것 같습니다.

그냥 오랫동안 내려온 풍습에 의해 정해진것 같아요.

중국사람이 붉은색을 좋아했던것은 원색이기때문인것 같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한국민이 흰색을 좋아하는것은 중국사람이 붉은색을
좋아하는 반작용이라고 봐도 됐니다.

오랜옛날 우리나라는 지존하신 높은분만이 붉은색을 입었고 대개의
평민은 흰색의 옷을 입었지요.

그래 우리민족이 흰색을 좋아하는 백의민족이 됐던것 같습니다.

인도민족은 노랑색을 아랍민족은 초록색을 좋아합니다.

특히 인도에서는 망고나무를 먹은 소의 오줌색을 가장 좋아합니다.

이오줌을 걸러만든 "인디안 옐로우"는 세계에서 대표적인 노랑색으로
인정을 받고있습니다."

-색과 산업의 발전도 궁금합니다.

"물론 인류산업발전에서 색상의 개발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일를테면 만년필의 몽블랑 시계의 롤렉스등 세계명품은 디자인값이지요.

디자인은 색깔이 좌우합니다.

색상이 얼마만큼 화려하고 품위가 있게 보이는데따라 값이 달라지지요.

우리에게도 색상에 대한 연구 색채재료에 대한연구가 시급합니다.

그 나라산업은 색상의 발전여하에따라 논하라는 얘기에 대해 귀를
귀울여야합니다."

- 고문님께서 국내에서는 색의발전에 제일 앞장서고 있는걸로
알고있습니다.

제 3의 화구라는 아크릴 칼라를 세계 6번째로 개발하셨다면서요.

"아크릴칼라는 유화로도 수채화로도 쓸수있는 만능 물감이지요.

그러나 석유제품인 아크릴은 제조공정시 순서가 바뀌면 안되는등 개발에
어려움이 많아 외국기업도 섣불리 덤벼들지 못했고 제조방법은 기업
비밀이었습니다.

일본교수와 상의를 해보면서 힌트를 얻었고 외국책을 섭렵한뒤 실험을
거듭해 지난 81년 성공했습니다.

당시 일본인은 물론 세계많은 사람이 놀라워했죠."

-대학에서는 주로 무엇을 강의하십니까.

"13년전 영남대에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재료학에 대해 강의를하면 미술대 교수는 물론 학생들이 강의를
듣습니다.

색채를 다루고 만드는 기술을 알아야만 정확한 색채선택이 가능합니다.

미대교수들의 경우 관념적이어서 화학분석적인 미술재료를 잘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후 홍익대 성균관대등에서 강의를 계속해오고있지요.

오는 6월에는 지난 84년에 냈던 미술재료학 책을 알기쉽게 다시
펴낼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어떤색깔을 좋아하시는지요.

"빨간색이 가장만들기도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인간이 가장좋아하는
색깔입니다.

저도 빨간색을 좋아합니다.

특히 선인장 꽃에서 기생하는 고니치라는 곤충의 창자에서 나오는
빨간색이 가장 아름답죠.

일본은 이색깔을 먹는 식료로 개발 게맛살에 적용했습니다.

인체에 무해한 색채개발이 산업발전에 얼마나 기여하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살아오시면서 후회스런점이 있으시다면.

"처음 미술재료에 손을 댔을때 수채화 물감에 손을 안댄것이 후회로
남습니다.

국내 미술계에서 열악한 분야가 수채화분야입니다.

그때 수채화 재료를 만들었다면 한국화단의 역사가 달라졌고 세계에서
손꼽을 만한 유명화가도 나왔을 것입니다.

아무리 유명화가라도 색채의 질이 중요합니다.

그림에있어 가장중요한것은 화가가그리고져하는 색깔이 변해서는
안되니까요.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매일 공장에서 일을 합니다.

특별히 걷는것이 취미지요.

가끔 세계의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원시미술을 관람하는것이 낙입니다."

[ 대담 = 이기한 <산업2부장>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