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민주정치의 발상지 영국 격언에 "민중의 소리는 신의 소리"라는 말이
있다.

"민중의 소리"가 공식적으로 표출되는 제도가 선거때의 투표행위이다.

하긴 얼마전에 작고한 후쿠다 일본전총리가 자민당총재선에서 낙선되자
"하늘의 소리중에도 가끔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말했지만 그는 선거결과에
깨끗이 승복했다.

우리나라처럼 정당의 역사가 짧고 정당이 지도자 개인중심으로 운영되는
풍토안에 선정당정치란 구호에 불과하지 않는가고 회의를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15대총선에서 국민은 후보 개인의 인물됨과 함께 소속정당을 보고
투소한 것도 사실이다.

무소속 당선자수가 16명, 득표율이 11.8%라는 선거결과가 이를 말해 준다.

문제는 이번 총선에서 신한국당이 의석과반수에 미달하는 139명이 당선
된데서 비롯됐다.

원내안정세력 확보에 실패한 신한국당이 무소속 당선자와 민주당소속
당선자를 대상으로 영입작업에 나섰고 지금의 추세대로 라면 국회 개원전에
안정의석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와 정치제도는 다르지만 일본의 경우, 집권당인 자민당이 총선
에서 절대원내안정세력을 확보하지 홋하면 자민당계열의 무소속당선자를
추가공인(공천)해서 입당시킨다.

그러나 야당소속으로 당선된 정치인이 총선직후에 야당을 탈당하고 여당에
입당하는 사례는 거의 생각할 수 조차 없는 일이다.

정치인중 당적을 변경했으면서도 "위대한 정치인"으로 지목되는 인물중에
영국의 전수상 윈스턴 처칠이 있다.

그는 보수당에서 출발해서 자유당으로 변신했고 뒤에 다시 보수당으로
복귀한 경력이 있다.

그가 정치인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의 주의를 위해 그의 당을
바꾼다.

또 어떤 사람들은 당을 위해 자기들의 주의를 바꾼다"고 평가한 것은
음미해 볼만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헌정사는 제5차개헌으로 국회의원이 "임기중에 당적을 이탈하거나
변경한 때 또는 소속정당이 해산된때 그 자격을 상실"하도록 제도화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정치적으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민주당을 탈당한 당선자들은 민주당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수 없기
때문이라고 해명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의 소속정당을 보고 투표한 민의는 앞으로 누가 대변해 줄
것인가.

과연 "민중의 소리는 신의 소리"인지 회의가 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