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만 해 주십시오. 저희 학교 졸업생을 귀하 회사의 입맛에 딱
맞는 신입사원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최근 산업계의 신조류를 형성하고 있는 "주문식" 개념이 대학의 교육
시스템에도 도입돼 교육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화제의 대학은 대구 영진전문대 (학장 최달곤).

지난 94년 전국대학평가에서공업계 전문대중 1위를 차지했고 금년도
산업체 위탁교육현황도 전국 최고치인 4백9개업체, 1천4백63명에 달하는
산학협동분야의 모범학교다.

이 학교가 교육부의 시범학교로 지정받아 올해부터 실시하고 있는
"전공 코스별 주문식 교육"은 한마디로 "소비자 만족"교육이다.

학교는 교육수요자인 기업체를 돌며 직종별 필요인력을 주문받는다.

기업들은 이때 졸업생들이 입사시 곧바로 실무에 투입될 수 있도록
교육수준의 기대치까지 제시한다.

예를 들어 A전자는 내년도에 컴퓨터 지원설계인 CAD분야 3명, CAM
(컴퓨터 지원생산)과 FA(공장자동화)직종 각각 2명씩 주문하다.

B산업도 CAD 1명, CAM 3명, 응용설계분야 2명 등을 요구하는 식이다.

각 기업의 주문내용은 곧바로 학교의 교육과정과 코스별 정원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적성과 주문 현황등을 고려해 각 코스를 선택한 학생들은
4학기중 3개 학기를 해당코스에 대해서만 집중 교육받는다.

이렇게 길러진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자신의 코스를 주문한 기업에
취업해 최소한의 OJT(직장내 직무교육)과정만 밟은 뒤 바로 실무를
접하게 된다.

"기업체가 원하는 교육을 실시하는데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기존의
학과중심 교육입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기계설계학과의 커리큘럼에 속하는 CAD,CAM,FA등
과정을 골고루 맛보게 하는데 이래서는 "모든 것은 배웠는데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반쪽자리 학생만 양산하는 셈입니다.

저희 학교에서는 점점 세분화 되고 있는 기업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계계열로 학생을 뽑은 뒤 코스가 나누어지면 해당 코스만 심도있게
가르칩니다"(하영 기획과장)

또 주문식이다보니 기업의 입맛이 바뀌면 학교의 교육과정도 당연히
이에 맞춰져야 한다.

따라서 대부분 산업체 근무경력자와 현역 산업체 기술간부들로구성된
이 학교의 교수들은 급속도로 변화화는 기업 사이클을 따라 잡기위해
눈코 뜰새없이 바쁘다.

영진전문대의 이같은 획기적인 교육 시스템은 구미공단 성서공단등
인근 6개 공단의 기업들과 교육계 인사들로부터 대단한 호평을 받고
있다.

도입 첫해인 지난해만도 LG전자등 1백55개 업체에서 2백83명을 주문했다.

물론 여기에는 전국 로봇경진대회에서 금상과 장려상등을 휩쓸며
서울대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이 학교 학생들의 실력과 주문식 교육
도입을 위해 지난 2년간 2백80억원을 투입한 학교의 열의가 크게 작용했다.

소문은 교육부는 물론 청와대와 재경원에까지 들어갔다.

지난 2월 박세일청와대사회복지수석과 권태신 당시 재경원교육문화예산
과장이 이 학교를 찾았고 4월에는 김성동교육비서관이 다녀갔다.

이달말께는 김광조 교육행정관이 이곳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들은 "교육개혁이 지향하는 신직업교육이 바로 이런 것 아니겠냐"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전문대 인사로는 유일하게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는 최달곤학장(60)은 "앞으로 기업을 모르는 대학은 살아남을 수 없고
기업또한 대학을 등한시 하고는 발전이 없을 것"이라며 "우리가 펼치고
있는 이 실험의 성공이 전문대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 대구 = 윤성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