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지긋한 비명문대 출신"

요즘 일본 기업 총수들의 프로필은 대체로 이렇다.

일본 대장성(재무부)해체론이 대두되는등 일본 엘리트의 상징인 관료주의가
흔들리면서 재계에도 명문대 출신 입김이 크게 줄어든 것.

이와함께 일본의 경기 한파속에서 재계 마운드를 누볐던 젊은 "구원투수"
형 사장들도 해빙기와 함께 퇴장하고 기존 "주전투수"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고 있다.

글로벌시대에 맞는 전략형으로 발탁된 대표적인 사례가 INAX사의 미즈다니
사장.

그는 올 1월 부사장에서 승진하자마자 7명의 임원을 정리했다.

기존의 주택설계기기메이커업태를 서비스업과 융합시키기 위해 전격 인사
를 단행한 것.

리코의 사쿠라이사장 선임도 신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것.

합작선과의 사업추진과정에서 일어나는 문화적 마찰을 없애기 위해 기술직
으로서 해외현지법인 경영경험까지 갖춘 베테랑을 발탁했다.

이같은 현상은 일본경제신문이 올들어 4월말까지 새로 취임한 사장 1백
75명의 출신대학및 나이를 분석한 결과와도 일치한다.

명문대 출신 사장이 크게 줄어들고 연령은 높아진 것이 올 인사의 특징으로
나타났다.

이들 신임사장중 도쿄, 게이오, 와세다, 교토대등 4대 명문대 출신의
점유비율은 31.9%.지난해 같은기간 신임사장의 경우 이들 명문대 출신이
절반가까이(44.6%) 차지했던 점에 비춰보면 급격한 하락이다.

특히 일본 엘리트의 산실 도쿄대 출신비율은 지난해 같은기간(17.9%)보다
절반가까이나 줄어든 9.7%로 급락했다.

일부에서는 대장성으로 상징되는 일본 관료층의 권위가 최근들어 크게
흔들리면서 동경대 출신을 사장으로영입해야할 이유가 희박해진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기업 총수의 고령화현상도 올해 신임사장들의 특징이었다.

이번 조사대상 새사장의 평균 연령은 57.3세.

지난해 같은기간 조사(55.9세)때보다 2살이상 많아졌다.

불황기에는 회사를 침체의 늪에서 끌어낼 정력적인 젊은사장이 필요했지만
이제 늪에서 거의 나왔으니 "혈기"보다는 "노련함"이 중요해진 것이다.

전무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경우가 줄어들고 부사장이 바통을 이어받아
사장에 오른 사례가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순식간에 생.사가 갈리는 역동적인 경제상황에서는 열정적인 엘리트의
지도력이 중요하지만 일단 안정기에 들어서면 노련한 관리자가 기업총수로서
더 적격"이라는 주장을 이번 조사가 증명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