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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칼럼] 초등학교 교실 .. 박선녀 <예일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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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 저녁 모임이 있었다.

    3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의 사람들이 모였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공교롭게도 초등학교 교사에서 대학 교수까지 모두
    교원이었으므로 이야기는 자연스레 교육쪽으로 흘렀다.

    현행 교육제도의 문제점과 교육개혁에 대한 전망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왠지 해답 없는 난제를 푸는 듯 답답한 마음이었다.

    이야기가 돌연 활기를 띤 것은 초등학교 시절을 회상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뜻밖에 공유했던 경험의 폭이 커서 모두들 신이 났다.

    몇 푼 안되는 기성회비를 내지 못해 집으로 쫓겨 가던 어느날, 뒷산에
    올라 산딸기 실컷 따먹고 허기를 채운 후 집에 돌아가서는 수업을 다 마치고
    온 양 시치미 뚝 떼던 일,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려오는 옥수수빵 배급차를
    목 빼고 기다리던 일, 소풍날 황송한 마음으로 껍질을 조심스럽게 까먹던
    은 계란 맛, 가스는 다 빠져나간 채 단물만 남은 사이다병을 입에 물고
    다니며 아껴아껴 마시던 일, 어찌 생각하면 너무 가슴 아픈, 징그러울
    정도의 가난을 재미삼아, 아련한 그리움마저 가지고 추억할 수 있었다.

    그 시절은 모두 가난했으므로 가난이 부끄럽지 않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또한 지금 어느정도 여유롭게 사니까 심상한 태도로 회상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문득 지난 여름 방학 때 연수를 받으러 갔던 어느 공립 초등학교를
    떠올렸다.

    무더웠던 여름날 교육받을 교실로 들어갈 때, 마룻바닥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신발 위에 헝겊으로 만든 덧신을 신었다.

    교실로 들어가니 난로 연통구멍이 벽에 뚫려 있었는데 여름임에도
    스산하게 느껴졌다.

    낡은 의자에 앉으며 마치 어릴 적 초등학교 교실에 앉은 듯한 착각이
    들었다.

    비교적 시설이 잘된 사립학교 교사인 나는, 그 학교의 낙후한 시설에
    깜짝 놀랐다.

    우리는 이제 살만 해서 어릴 적의 궁핍을 그리움으로 추억하는데, 학교는
    내 어릴 적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었다.

    마룻바닥을 윤내기 위해 초를 먹인 다음, 마른 걸레로 빡빡 문질러대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각 교실마다 설치된 TV 모니터와 화사한 꽃병이 오히려 교실의 남루함을
    과장해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어릴 적 학교는 꿈을 주었다.

    학교에 가면 집에서는 감히 가질 수 없는 오르간이 있었으며 동네
    누구보다도 많이 배우고 멋쟁이인 선생님이 계셨다.

    학교 건물도 우리 집에 비하면 완벽하게 반듯했다.

    허기를 메울 옥수수 빵도 주었고.

    오늘날의 학교는 사회의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학력으로나 보수로나 교사는 예전처럼 권위를 갖지 못한다.

    중앙 난방식 아파트에서 따뜻하게 지내는 많은 아이들이 가스 벽걸이
    난로를 설치한 교실에서 두통으로 고생한다.

    집이나 학교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연주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는 낡은
    오르간을 쳐야 한다.

    그것 뿐인가.

    어린이들은 등-하교 길에 책가방이며 학습준비물이 많아 고생하는데,
    사물함이 없는 학교도 쉽게 볼 수 있다.

    도서실을 갖추고 있는 학교는 또 얼마나 될까.

    예전에는 당당하게 서있던 초등학교 건물은 주변에 확장되는 차도와
    수많은 건물들 틈에서 웅크리고 앉아 방음벽으로 자신을 보호하기에
    바쁘다.

    모두들 초등학교에 한번 가보았으면 한다.

    교실의 낮은 책상에 앉아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겨보면 어떨까.

    그리고 우리의 미래인 어린이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교실 속의
    과거를 눈여겨 보기를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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