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사-중진공 공동]

경창산업은 항상 일본의 동종업계 기업을 경쟁대상으로 삼는다.

이 회사가 일본기업을 경쟁사로 설정하는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지난 80년초의 일이다.

자전거부품 오토바이부품 자동차부품을 차례로 생산해온 경창은
사업확장을위해 자동차케이블분야에 대규모투자를 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대구 중리동에 4천4백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합작기업을 찾아나섰다.

당시 사장인 손기창회장(73)은 이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인 일본의
TSK사를 방문, 합작을 요청했다.

TSK측은 경창의 기술수준을 점검해본뒤 합작투자에 흔쾌히 합의했다.

한국측은 공장과 설비를 제공하고 일본측은 자금과 일부기술을
제공하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면서 일본측이 "정치적불안으로 합작을 포기할수
밖에 없다"라며 등을 돌려버렸다.

이미 경창은 확보한 부지에 5개월에 걸쳐 대규모설비를 들여놓은
상태에서 돈과 기술을 댈곳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때 자동차사업본부장을 맡았던 창업2세인 손일호사장(44)은 "일본측이
일방적으로 등을 돌리자 정말 하늘이 노랬다"고 밝힌다.

경창은 이를 악물고 헤쳐나갈 길을 찾기로 했다.

우선 확보해놓은 공장부지일부를 떼내어 1천5백평을 팔았다.

또 손회장이 지난 61년 첫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모아온 개인재산을
모두 팔아 운전자금으로 충당했다.

연구팀을 만들어 기술개발에 전력을 기울였다.

어떻게든 일본의 기술을 따라잡아야겠다는 일념으로 공정개선 품질향상에
힘썼다.

덕분에 이 회사는 약 80여가지의 자동차부품을 일본의 도움을 받지 않고
국산화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경창은 현재 컨트롤케이블 래치어셈블리 오토트랜스미션레버 와이퍼 등
9백여가지품목을 생산, 현대자동차 등에 납품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A급협력업체다.

이 회사는 일본기술의 도입없이 자립하는데 멈추지 않고 최근에는
일본시장을 본격적으로 밀고 들어갔다.

먼저 자전거부품시장에서 승부를 걸었다.

중점진출품목은 캘리퍼브레이크.

이 품목은 당시 일본의 요시가와사와 대만의 중소업체들이 일본시장을
잡고있었다.

그러나 경창의 3개법인중 하나인 경창정공이 이 시장을 쳐들어가자
대만기업들은 품질과 가격이 맞지 않다며 포기해버렸다.

그러나 일본의 요시가와는 자국시장을 한국기업에 내줄 수 없다며 단가를
내려가면서까지 일본진출을 방해했다.

그러나 가격덤핑으로 버텨오던 일본의 요시가와사가 경창의 공세에
못견뎌 지난해 도산을 하고말았다.

이에 앞서 케이블업체인 TSK사도 잘못을 빌며 다시 합작을 하자고
요청해왔다.

그러나 경창은 이들의 요청을 단호히 거절했다.

요시가와사의 도산이후 경창은 일본 자전거브레이크시장의 60%를
차지하게됐다.

자전거브레이크분야에서는 세계최대의 업체로 부상했다.

부품분야에서 일본기업을 물리치고 세계최대업체가 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덕분에 닛산자동차도 부품주문을 늘리고 있다.

경창의 이러한 자립정신 이면에는 뼈를 깎는 경영혁신노력이 숨겨져
있다.

"신토불이의 경영기법"인 리팩토리를 일찍 도입한 덕택이었다.

손사장은 "지난 94년 9월 리팩토리진단을 처음받고 몹씨 충격을
받았다"고 술회한다.

당시 기업진단평가점수는 1백점만점에 30점.

10개 중점항목중 공정개선과 품질경영만 합격선이었고 나머지 8개항목은
형편없는 낙제점수였다.

첫진단을 맡았던 김복규중진공지도위원은 "당시 작업반의 목표설정,
로트당 소요시간관리, 순환보직, 이익구조, 마케팅영업등에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었다"고지적한다.

부품업체여서 영업및 수출마케팅이 가장 취약점이었다.

지난 2년간 이 회사를 지도해온 김윤희지도위원은 "그러나 이회사의
최고경영자들은 자신의 취약점을 지적해주면 선선히 이를 인정하는 것이
가장 큰강점이었다"고 분석한다.

리팩토리팀의 지적에 따라 경창은 생산라인을 바꾸고 생산직사원들도
직무를순환시키도록 했다.

작업목표도 세웠다.

기획실 등 스태프부서를 줄이고 마케팅부서를 보강했다.

이런 경영혁신에 힘입어 현대자동차의 100PPM 최우수업체로 선정됐다.

일본 닛산자동차와 아라이사등으로부터의 수출주문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동남아시장에서도 일본기업들을 따돌렸다.

합작퇴짜를 맞은 뒤 15년만에 완벽한 설욕을 한 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