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계의 대외경쟁력에 "빨간불"이 켜졌다.

신조선 수주선에서 경쟁상대인 일본에 판판히 깨지는등 올들어 급격한
체력저하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

지난 1월 아랍에미레이트연합의 UASC사가 발주한 10척의 컨테이너선
입찰에서 국내 컨소시엄이 일본연합군에 밀린데 이어 2월에 나온 영국
P&O사의 수퍼 컨테이너선 4척도 일본 IHI사에 빼았겼다.

국내 조선업계의 체력저하는 지난 1.4분기 수주실적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기간중 국내업체들이 수주한 물량은 63만5천GT.

작년 같은기간보다 무려 46.7%나 줄어들었다.

반면 일본업체들은 작년대비 큰폭의 신장세를 기록하며 한국의 4.1배에
해당하는 2백59만GT(일본 운수성집계)를 수주했다.

총9백50만GT를 수주,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조선강국으로 부상했던
지난 93년은 물론 7백13만GT로 일본의 8백20만GT에 근접했던 작년과는
판이한 상황이다.

조선업계는 연초만해도 수주부진을 일시적 현상으로 보았다.

"수주를 못하는게 아니라 일감이 충분하기 때문에 수주를 하지않는
것"이라고 설명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분위기가 1백80도 바뀌었다.

"이러다간 새로 만든 도크를 놀려야하는게 아니냐"는 위기감마져 감돌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의 체력이 이처럼 급격히 저하된 원인은 무엇인가.

조선업계는 크게 세가지 요인을 꼽는다.

첫째는 "엔저원고" 현상에 따른 상대적인 가격경쟁력 약화.

"작년 상반기중 달러당 85엔까지 내려갔던 엔화의 달러환율이 올들어
1백6~1백7엔대로 올라간데 비해 원화의 달러환율은 7백90원대에서
7백60원대로 오히려 떨어져 게임이 않된다"(이인성대우중공업상무)는
설명이다.

실제로 일본업체들은 UASC가 발주한 컨테이너선 입찰과 척당
5천7백만-5천8백만달러로 예상가보다 2백만~3백만달러씩 낮게 써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두번째는 선박금융조건의 열세다.

일본 IHI와 대우중공업이 경합을 벌였던 영국 P&Q사의 수퍼컨테이너선
입찰에서 우리가 진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대우중공업은 건조중 이자를 12%로 했고 결제방식도 첫 계약때
40%를 받고 나머지 대금은 건조공정에 따라 20%씩 3차례 나눠 받는
조건을 제시했다.

반면 IHI는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건조중 이자를 2%로 낮게 하고
결제도 처음과 공정 중간에 10%씩 3번 받고 완전히 건조된후 70%의 잔금을
치르도록 선주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제시해 대우를 녹다운 시켰다.

세번째 요인은 일본의 원감절감 노력과 정부및 관련업계의 지원.

일본 조선소들도 건조원가를 낮추기 위해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 조선소와
제휴, 단순블록작업을 맡기는등 대한 가격경쟁력 강화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또 한국과의 수주경쟁을 자존심싸움으로 몰아붙여 자국 정부및 업계의
지원을 유도하고 있다.

실제로 신일철등이 강재가격을 대폭 낮춰주었으며 일본 정부와 금융기관도
자금지원을 확대하고 있다고 조선공업협회 관계자는 지적했다.

물론 3월말 결산법인인 일본 업체들이 결산실적을 의식, 수주 드라이브를
건 점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다시말해서 가격및 비가격경쟁력의 제고없이는
일본을 따라잡는게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조선업계 관계자들은 강조한다.

LNG선 등 고부가가치선 건조비중을 늘리고 값싼 노임을 활용할 수
있는 해외생산기지를 확대해야한다는 얘기다.

삼성중공업이 중국에, 현대미포조선이 베트남에 각각 현지 생산기지를
착공한 것 처럼 해외진출을 통한 원가절감등을 적극 모색해야한다.

이정남현대중공업부사장은 "원가를 절감하고 배값은 높이는 고수익구조로
변화하기 위해선 경영구조의 과감한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대형물량이 잇달아 발주된다.

영국의 BP등 오일 메이저들의 척당 9천만달러짜리 유조선 5~6척을
발주할 예정이고 이란국영석유회사도 석유제품운반선 5척등을 곧 입찰에
부칠 계획이다.

이를 둘러싼 일본과의 대회전에서 국내업체들이 다시 일어설 수있을지
국내외 조선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심상민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