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민속박물관 50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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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학은 민중의 생활율동을 통해 민중의 문화구조를 파악하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다.
따라서 민속학의 연구대상은 구비전승의 문학과 예술에서부터 세시풍속
관혼상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친숙한 것들이다.
조상들이 남긴 민속자료를 수집 보관하고 전통적인 생활상을 전시하는
민속박물관이 우리 민족의 삶의 지혜와 문화특색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줌으로써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민속"이라는 것의
이같은 대중성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일반 관람객들은 고고학박물관인 중앙박물관에서 보다 민속박물관
에서 더 깊은 인상을 받는다.
일제때 서울에는 총독부박물관 이왕직박물관외에 시정기념관이라는
박물관이 하나 더 있었다.
역대 통감과 총독의 초상, 그들이 사용한 마차와 침대, 한일합방조인식을
했던 방의 가구 등 일제의 한국통차관계유물을 모아놓은 곳이다.
일본이 패망한뒤 일본인 유종열 천천백교가 수집했던 민예자료를 이곳에
옮긴뒤 국립민족박물관으로 개칭하고 송석하을 관장으로 임명해 1946년
4월25일 개관한 것이 한국 최초의 민속박물관이었다.
오늘로 국립민속박물관이 개관50주년을 맞는다.
갖가지 기념행사가 열리는 가운데 초대관장이었던 민속학자 송석하
선생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는 뜻깊은 식전도 마련한다.
92년까지만 해도 1,000평의 좁은 공간에 1년 예산이 고작 1억원 이내에서
맴돌았던데 비하면 1만6,000여점의 소장자료를 전시하는 4,500평의 공간과
학예적 13명을 포함한 53명의 직원, 30억원의 예산을 확보하고 있는
민속박물관은 일약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민속박물관은 건평이 우리 민속박물관의 3배, 인력은
4배, 예산은 11배나 된다니 비교하기 조차 쑥스럽다.
그런데도 연평균 관람객수는 일본이 약30만명인데 반해 우리는 354만명에
달해 10배가 훨씬 넘는다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밖에 없다.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박물관 주변에 토종농산물을 심고 음악회 민속잔치
학술발표회를 계속 열어 관람객과 친밀한 관계유지에 노력을 기울여온
박물관 직원들의 노력은 높이 살만하다.
민속박물관은 재정문제외에도 야외전시공간 연구교원 교육요원확보 등
아직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
툭하면 정부는 "21세기 문화입국"을 내세우지만 단 하나뿐인
국립민속박물관을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관광명소로 만들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중앙박물관에 이어 년세기를 맞는 민속박물관의 미래청사진도 나올 때가
됐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5일자).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다.
따라서 민속학의 연구대상은 구비전승의 문학과 예술에서부터 세시풍속
관혼상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친숙한 것들이다.
조상들이 남긴 민속자료를 수집 보관하고 전통적인 생활상을 전시하는
민속박물관이 우리 민족의 삶의 지혜와 문화특색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줌으로써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민속"이라는 것의
이같은 대중성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일반 관람객들은 고고학박물관인 중앙박물관에서 보다 민속박물관
에서 더 깊은 인상을 받는다.
일제때 서울에는 총독부박물관 이왕직박물관외에 시정기념관이라는
박물관이 하나 더 있었다.
역대 통감과 총독의 초상, 그들이 사용한 마차와 침대, 한일합방조인식을
했던 방의 가구 등 일제의 한국통차관계유물을 모아놓은 곳이다.
일본이 패망한뒤 일본인 유종열 천천백교가 수집했던 민예자료를 이곳에
옮긴뒤 국립민족박물관으로 개칭하고 송석하을 관장으로 임명해 1946년
4월25일 개관한 것이 한국 최초의 민속박물관이었다.
오늘로 국립민속박물관이 개관50주년을 맞는다.
갖가지 기념행사가 열리는 가운데 초대관장이었던 민속학자 송석하
선생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는 뜻깊은 식전도 마련한다.
92년까지만 해도 1,000평의 좁은 공간에 1년 예산이 고작 1억원 이내에서
맴돌았던데 비하면 1만6,000여점의 소장자료를 전시하는 4,500평의 공간과
학예적 13명을 포함한 53명의 직원, 30억원의 예산을 확보하고 있는
민속박물관은 일약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민속박물관은 건평이 우리 민속박물관의 3배, 인력은
4배, 예산은 11배나 된다니 비교하기 조차 쑥스럽다.
그런데도 연평균 관람객수는 일본이 약30만명인데 반해 우리는 354만명에
달해 10배가 훨씬 넘는다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밖에 없다.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박물관 주변에 토종농산물을 심고 음악회 민속잔치
학술발표회를 계속 열어 관람객과 친밀한 관계유지에 노력을 기울여온
박물관 직원들의 노력은 높이 살만하다.
민속박물관은 재정문제외에도 야외전시공간 연구교원 교육요원확보 등
아직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
툭하면 정부는 "21세기 문화입국"을 내세우지만 단 하나뿐인
국립민속박물관을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관광명소로 만들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중앙박물관에 이어 년세기를 맞는 민속박물관의 미래청사진도 나올 때가
됐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