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홍루몽] (391) 제9부 대관원에서 꽃피는 연정 (77)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도대체 저 여자가 누군가.

    대관원에 들어와 있다면 각 처소에 딸린 시녀들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시녀 같지는 않았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딱 어울리게 입은 옷차림도 그렇고, 궂은 일 같은
    것은 해본 적이 없는 듯한 말쑥한 얼굴을 보아도 그러하였다.

    보옥이 가만히 뜯어보니 여자의 이목구비가 여간 또렷하지 않은게
    대옥이나 보채의 미모에 못지 않았다.

    저런 미모라면? 그제야 보옥이 그 여자의 신분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대관원 통후가문쪽에 있는 이향원에서 늘 연극 연습을 하는 열두 명의
    여배우들 중 하나일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보옥이 연극을 구경할 때 본 얼굴 같기도 했다.

    그런데 생(남자 주인공)역을 맡았는지, 단(여자 주인공)역을 맡았는지,
    아니면 정(악인)역이나 축(익살꾼)역을 맡았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 여자가 장자를 쓰고 또 쓰고 있는 이유에 대해 추측을 해보다가
    보옥이 손으로 무릎을 소리나지 않게 살짝 쳤다.

    바로 그 여자는 가장의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가장은 소주에 가서 열두 명의 여배우를 사 가지고 와 이향원에서
    연습하도록 하면서 지금도 그 배우들을 관리하고 있지 않은가.

    그 여자가 가장을 연모하는 마음을 그런 식으로 스스로 달래고
    있는지도 몰랐다.

    슬피 흐느끼는 것으로 보아서는 어쩌면 가장이 그 여자를 겁탈
    했을 수도 있었다.

    가장은 능히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 아닌가.

    만약 가장이 그랬다면....

    보옥은 그 여자가 마치 자기 여자라도 되는 양 가장에 대한 분노가
    끓어올랐다.

    여자는 계속 애간장이 녹는 듯이 흐느끼면서 비녀로 장자를 자꾸만
    쓰고 있었다.

    머리가 풀어진 것으로 보아 그 비녀는 여자가 머리에 끼고 있던
    비녀임에 틀림 없었다.

    아, 저렇게 가냘픈 여자의 작은 가슴 속에 저토록 큰 고통과 슬픔이
    담겨 있단 말인가.

    보옥은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하늘도 그 여자의 흐느낌에 응하는 듯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여자의 엷은 옷이 흠뻑 젖어 몸에 착 달라붙었다.

    어깨와 젖가슴, 엉덩이의 선이 그대로 드러났다.

    미인도에 빼어난 재주를 지닌 화가조차도 저런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 아름다움은 욕정적인 차원을 뛰어넘은 처절한 아름다움이었다.

    보옥은 자기도 젖고 있는 줄은 모르고 그 여자가 안쓰러워 그만 자기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그러고 있으면 비에 다 젖어 감기에 걸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0일자).

    ADVERTISEMENT

    1. 1

      [아르떼 칼럼] 지금 화가 신사임당에 주목하는 이유

      최근 한국 미술계는 여성 작가와 전통 미술을 다시 읽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리움미술관은 여성 작가들의 실험성과 조형 언어를 재조명하는 전시를 잇달아 선보였다. 2025년 9월부터 연 이불의 대규모 개인전은 한국...

    2. 2

      [천자칼럼] 신조어 제조기 월가

      미국 월가의 경쟁력 중 하나가 신조어와 약어를 만들어 내는 탁월한 능력이다. 입에 착 감기는 맛깔난 용어를 통해 복잡한 시장 상황, 기술 변천, 자금 이동 경로를 단박에 파악할 수 있게 한다.2000년대 초 세계 경...

    3. 3

      [사설] 훼손된 교섭창구 단일화 원칙…노사협상으로 날 샐 판

      지난 15년간 노사 간 교섭의 기본 틀로 기능해온 ‘교섭창구 단일화 원칙’이 크게 훼손됐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란봉투법 시행(3월 10일)을 불과 열흘가량 앞둔 어제 발표한 ‘교섭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