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씨춘추"에는 공자가 콧등을 찌푸려가면서 김치를 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물론 공자가 먹었다는 김치란 지금 우리가 먹는 김치와는 다른 것이어서
채소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식품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이미 1~3세기께 죽순
가지 무우등을 소금에 절인 김치가 식용되고 있었다고 한다.

술빚는 원리를 적용시켜 장을 만들고 장아찌와 김치도 만들어 먹었다는
이야기다.

일본에는 한국보다 좀 뒤진 나량시대 (645~793)에 와서야 절임류의
김치가 등장한다.

일본의 "고사기"에 응인왕때 백제사람 수수보리가 건너와 누룩으로
술빚는 법을 가르쳤는데, 그때 함께 전해준 "수수보리김치"가 일본의
대표적 김치인 단무지가 됐다는 설은 김치의 종주국은 역시 한국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독자적인 발전을 거듭한
한국김치는 고려때에 오면 한층 다양해진다.

미나리김치 무우김치 죽순김치 부추김치외에 나박김치도 등장한다.

이때 이미 마늘 생강등의 향신료를 넣은 양념김치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선중엽에 고추가 수입되면서 한국김치에는 일대 혁명이 일어난다.

1776년에 간행된 "산림경제"에는 생선식혜에서부터 총각김치 배추김치
오이소백이 동치미 오이지 가지김치 전목김치 굴김치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의 김치가 거의 다 등장하고 있다.

1712년 사신으로 중국에 갔던 김창업의 "연행일기"에는 중국에 귀화한
한국인 노파가 연경에서 동치미 등 한국김치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미 18세기에는 한국김치가 중국에서 까지 인기를 끌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흥미있는 사료다.

한국의 "김치"가 일본의 "기무치"를 누르고 애틀란타올림픽 공급권을
따냈다.

또 최근 "뉴욕타임스"지는 "발효식품인 김치가 지방질이나 코레스테롤이
없는 건강식품"이라고 극찬하는 특집기사를 내는 등 김치가 세계적인
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백성이 무명 옷을 아니 입고 모직과 비단을 입게 되며, 김치와
밥을 버리고 우육과 브레드를 먹게 되며..."

개화독립운동가 서재필은 한국의 식생활을 서양식으로 개조하자는
"독립신문"사설에서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역설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가장 예리했던 그의 미래를 내다보는 눈도 100년
앞까지 내다보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