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기본 의식 곧 원형은 역사적 산물이며 그 내용에는 우열이 없다.

그러나 시대적 상황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원형은 새로운 시대적 여건에 어울릴수 있도록 승화되어야만이 민족공동체
의 발전을 기대할수 있다.

우리에게 가해진 신대적 요청은 국민 국가와 세계화에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 나타나는 한국민의 의식은 조선 시대, 아니 그보다도
훨씬 먼 고대 삼한시대의 부족적인 것과 다름이 없다.

고대 부족사회의 가치관은 좁은 부족을 위하는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우리 딸은 얼굴이 얽어있기에 더욱 예쁘다"는
속담에 담겨져 있는 병적인 한국인의 "우리" 의식이 원색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때로는 정겨울수도 있는 "우리"라는 낱말이 이웃과의 사이에 "울"을 치고
국민적 일체성을 외면한 것이나 혈연중심의 마을에서 단순한 동경 생활을
할때를 긍정적인 "우리"의 적은 국민국가 형성에는 부정적이다.

근대화는 곧 산업화, 국민국가를 요청한다.

과거 2500년간 한국은 계속 일본의 비약적인 발전에 기여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말 조선은 국민국가적인 의식을 형성 못함으로서
재빨리 국민국가가된 일본에 당해야만 했다.

이 교훈은 곧 20세기말 국제국가 건설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되새겨야할 과제이다.

토마스만은 제1차대전후 이상적인 국가 건설을 목전에 둔 독일인이 민족
원형을 원색적으로 발동시켜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에 추락한 사실을 한탄
하여 "정치가의 수준은 곧 국민의 의식 수준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비이성적으로 격양된 좁은 우리 의식이 애향심으로 위장되어 지역 정서라는
말로 바뀌고 말았다.

크게 나라일을 생각해야할 후보자들은 오히려 지역감정을 이용하여 지역
발전을 공약으로 삼는등 지역 주민의 비위를 맞추는데 급급했다.

근대 이후 역대 한국 지도자는 모두 좌절을 체험했다.

대원군은 청에 끌려갔고, 이승만은 망명, 박정희는 피살, 전두환 노태우는
형무소행을 했다.

지역의 원색적 "우리"의식을 반영하고 국가, 국민보다는 자신의 가문, 지역
친.인척의 이익을 앞세움으로서 시대적 사명을 뒷전에 둔 탓이다.

시골의 뱃사공은 자신의 가족이나 친.인척을 앞세워도 큰탈은 없다.

그러나 국민 국가의 선장이 국제사회의 거친 바다를 지역 친인척을 우선시
해서 항해한다면 작은 풍랑에도 난파한다.

국회의원도 본래의 사명에 어울리지 않게 손을 안으로만 굽히고만 있다면
국민에게 외면 당하고 말것이다.

이번 선거는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기지 않을까 염려된다.

후보간의 치열한 선거전으로 지역 사이에 불신 풍조도 조성되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도저히 지킬수 없는 공약도 남발되었다.

선거 소송도 있을 것이다.

사법 당국은 공정하게 처리해야만 그간 조성된 불신 풍조를 씻을수 있다.

선거 과정이 아무리 치열했다 하더라도 일단 당락이 결정된 바에는 당선자
에게 축하의 말을 건너는데 인색할수는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후보자는 모두 공통적으로 국가 국민을 위해 충실히
노력한다고 외쳤다.

국민은 그말을 믿을 것이고 당선자는 그것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

당선자는 영광과 함께 무거운 짐을 졌다.

당선자가 충실히 노력을 다할때 선거 후유증은 소멸되어갈 것이다.

특히 선거의 열풍이 한참인 와중에 북한 김정일 일파는 심상치 않은
음식임을 보였다.

우리는 마땅히 정권이 아닌 민족의 차원에서 하나로 뭉쳐 대처해야할
것이다.

통일과 대북한 문제는 단순한 정권 유지의 구실이 될수 없으며 여야를
불문하고 대중적으로 대처해야할 것이다.

이문제가 선거에 이용된 것도 깊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민족 국가 그리고 정권은 별개의 것이며 우선해야할 것은 민족이지 정권은
아니다.

대북한문제는 이번 선거의 결과에 관계없이 공동적으로 지혜를 모아 민족의
앞날을 열어 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국가대사를 염려하는 국회의원 모두의 의무일 것이다.

역사는 흐르며 민족 공동체는 그속에서 발전을 도모해야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