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하 < KDI 연구위원 >

최근의 경기동향에 관한 해석을 놓고 의견들이 분분한 것 같다.

일부에서는 최근 우리나라의 경기가 매우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급속한 침체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어느 쪽 주장에나 일리는 있다.

즉 나타난 지표들이 부분적으로 혼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그중 어느
한 쪽만을 보면 어렵게 보이기도 하고 또 다른 쪽을 보면 낙관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우선 불안한 쪽부터 보면 설비투자 관련지표들의 움직임이 좋지 않다.

지난 4.4분기에 설비투자 증가율이 1.5%로 급락하더니 금년에 들어와서도
2월에 자본재 수입액 증가율이 5.4%로 크게 둔화되고 있다.

설비투자의 선행지표라고 할수 있는 기계류 수입허가액도 1~2월중 작년
동기에 비해 3.8% 감소함으로써 작년 하반기이후의 부진한 양상을 지속하고
있다.

불안하다는 시각에서 무역수지 적자문제가 지적되기도 한다.

실제 1~2월중 무역수지 적자는 22억달러에 달하여 작년 동기간중의 14억불
적자에 비해 8억달러나 늘었다.

무역수지를 한 나라 경제의 경쟁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해석하기도 하거니와
최근의 적자폭 확대가 우리 경제의 급속한 경쟁력약화를 의미하는 것이나
아닌지 하는 우려가 일고 있는 것이다.

반면 낙관적인 쪽을 보면 산업생산의 전반적 수준은 아직 양호한 편이다.

작년 4.4분기에 크게 둔화되었던 산업생산지수는 금년 1~2월들어 10.3%로
회복되었다.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제조업부문의 1.4분기 성장률은 족히 8~9%에 달할
만한 수준이다.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사건으로 사회가 뒤숭숭해 지면서 경기비관론이
팽배하였던 지난 연말의 전망에 비하면 오히려 경기하락세가 주춤하고 있는
형국이다.

일본 엔화가치의 하락으로 수출전선에 비상이 걸리리라던 것과는 달리
수출도 1~3월중 22%나 증가하는 견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소비증가세도
연말의 약세에서 다소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관련된 공공투자는 금년들어 100% 이상의
확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와같이 상충하는 지표들의 움직임을 종합적으로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가?

우선 경기의 종합적인 상황을 나타내는 것으로는 산업생산지수의 움직임에
좀더 무게를 두어야 할 것같다.

생산지수는 그 생산활동의 근원이 투자에서 오는 것이든 소비쪽에서 오는
것이든 관계없이 일어난 현상을 포괄적으로 요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문별로 설비투자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틈을 소비와
수출, 그리고 공공건설이 뒷받침하면서 전체 경기가 지난 연말의 우려와는
달리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형국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연내에 경기가 반전하여 95년과 같은 호황수준에 이르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동안 상당한 재고누적이 있어왔기 때문에 향후 생산증가세는 둔화되어갈
것이며 또 경기순환의 주기적 움직임에서 보더라도 93년이래의 상승국면이
이제는 하강국면에 진입할 시기에 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기하강의 속도에 있다고 하겠는데 지금까지의 소비나 수출,
건설투자등의 동향을 볼때 경기급락은 없을 것으로 보이며 이 경우 연간
전체의 성장은 정부가 목표하였던 연착륙 시나리오(7.5%내외의 성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같다.

(그동안 엔화가 다소 절하되었지만 대신 세계경제가 지난 85~88년에
이어 전후 두번째의 장기호황국면에 진입하고 있어 수출은 비교적 견실한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호한 수출전망은 또 설비투자의 조기회복을 가능케할 것이다)

끝으로 최근의 무역수지에 대한 우려는 다소 과장된 감이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첫째, 1~2월중 적자가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에는 일부 특수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즉 3월부터 유류제품에 대한 관세율이 3%에서 5%로 환원될 것을 예상하여
1~2월중에 원유및 유류제품의 수입이 전년동기에 비해 10억달러이상 증가
하였는데 이를 제외한다면 무역수지적자는 오히려 감소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 3월중에는 이미 조기도입된 유류제품의 수입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전체적으로는 2억~3억달러 정도의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자본자유화를 추진하는 과정에 있어서 어느정도의 무역수지적자는
바람직한 면도 있다.

싼 금리의 외국자본을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외국의 자본재를 도입하고
이 경우 무역적자는 증가할 것이다.

이를 통해 국내 자본축적을 도모하지 않는다면 자본자유화는 국내물가를
올리거나 환율절상으로 수출기반을 약화시킬 뿐이다.

이 과정에서 외채가 늘겠지만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올릴수 있는 한
외채 자체를 문제삼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0일자).